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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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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 중환자 대기실


BY 그림 2004-12-31

"하아얀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오는 꿈을 꿨지.

이게 무슨 징조인가 아침 내내 뒤숭숭했는데 갑자기 서울에서 전화가 온거야.

우리 둘째가 지난 밤에 마을버스에 치여서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고.

마을 버스에 치였다는데 아주 중상은 아니겠지, 아니겠지 했어,

막내 딸도 '엄마, 오빠 괜찮을 거라고' 위로하며,

떨리는 가슴으로 왔는데…"

 

이른 아침 김포 공항에 도착한 즉시 마중 나온 남동생과 함께 병원 중환자실로 향했다.

가족들이 교대로 대기실에 대기한다 했다.

뇌경색 수술을 하신 아버지는 아직 의식이 없으시지만 언제 깨어나실지 모르니까.

깨어나시면 병원에서 바로 연락을 준다고 해도

두 남동생은 교대로 대기실 의자에서 밤을 지낸다 했다.

 

중환자 대기실이란 곳은

엘레베이터실 홀에 몇개의 쇼파와 의자가 전부였다.

이른 아침의 대기실은 텅 비어 있었다.

50대 초반의 한 아주머니만 혼자서 그곳을 지키고 계셨다.

동생은 출근을 하고.

나는 혼자 12시반 면회 시간까지 그곳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동생이냐고, 아들들이 어쩜 그렇게 다 효자냐고,

그렇게 시작하신 아주머님의 사연.

 

목사님이시던 친정 아버님,

일찍 부모님을 여의시고 여동생과 함께 친척집에서 자라신 이야기,

아들 둘, 딸 하나, 세아이 두고 일찍 가신 아저씨,

아이들 교육 제대로 못 시켰어도 부모 원망 안하고 착하게 자라준 아이들,

돈 번다고 서울 올라온 두 아들,

식도 못 올리고 혼인 신고만 하고 사는 큰 아들, 착한 며느님 이야기,

 

둘째 아들,

며칠전에 전화해서 선물 사놓고 나 보러 온다고 했는데,

그 애 온다는 날,

그 애는 안 오고 사고 난 소식 듣고 내가 올라 왔어.

그 애가 날 보러 온다는 날,

 

뇌사상태라 했다.

그날 오후2시까지 장기 기증을 할건지 그냥 보낼 건지 결정을 하셔야 된다 하셨다.

도무지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하셨다.

어떻게 보내는 걸 그 아이가 좋아할 지 모르겠다고.

 

제가 사는 곳에서는 장기 기증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그저 그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의 동생 부부분이 오셔서 뭐라도 드셔야 된다고 모시고 나가셨다.

나도 나왔다. 면회 시간은 아직 몇시간이 남아 있었다.

천천히 걸었다. 8월의 서울 햇살이 다가왔다.

계속 걸었다. 걷다가 배가 고픔을 느꼈다.

서울에 오면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그날은 맛을 알 수 없는 날이었다.

 

병원 앞에서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를 보았다.

옥수수좀 주세요.

어디서 뭐를 사야 되는지는 생각도 못하겠고

보이는 것이 옥수수였고

아무 것도 안드셨을 아주머니, 혹시 억지라도 드리면

 

대기실에 들어가니 아주머니가 안 보이셨다.

아직 안 들어 오셨나. 생각하는데

갑자기 아주머니가 중환자실에서 나오시면서

계단실 바닥에 가 쓰러지시면서 통곡을 하신다.

뒤 따라 나오는 큰아들과 며느리.

아주머니 곁으로 가서 안아 드렸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님 이분에게 평안을 주세요.

당신이 이 아픔을 더 잘 알고 계시잖아요.

 

면회 시간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이 대기실은 물론이고 계단실까지 차 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불평을 하고 있었다.

"아 여기 당신 혼자 뿐이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같은 처지인데 뭘 당신만 울고불고…"

같이 온 가족 중 한 여자가 또 다른 불평을 시작했다.

그곳에 있는 누구도 그 아주머니의 아픔보다 더 깊은 아픔이 닥친 사람은 없었다.

누구나 자기 아픔이 가장 크다지만.

착한 큰 아들과 며느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때 난, 눈이 좀 나빠진다. 보이는 것이 없을만큼.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장기 기증을 하기 위해 강남 S병원으로 가는 엠블런스옆에

큰 아들의 부축을 받고 서 계시는 아주머니와

아까 저희들 대신해서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노라 하는

착하고 여리게 생긴 큰 며느리와 아들을 배웅하고 올라온 나는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 온 듯.

 

그 후로 다섯번의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해마다 그 아주머니의 주소를 꺼냈다  다시 넣는다.

매 해마다 다음 해로 연기하며.

혹시나 아주머니의 아물고 있는 상처를 덧나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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