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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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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익장


BY 낸시 2022-07-04

결혼 전 같이 모여 살던 때, 큰언니는 비실이였다.
툭하면 아프다고 하였고 아무리 바빠도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런 언니를 나는 무녀리라고 놀렸다.
무녀리는 한 배에서 나온 새끼들 중 튼튼하지 못한 새끼를 말할 때  쓰이는 말이다.
대부분 가장 먼저 태어난 녀석이 문을 열고 나오느라 힘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가장 먼저 태어나느라 힘들어서 그랬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암튼 언니는 우리 넷 중 제일 약했다.
다른 셋도 억세고 강한 것과는 거리가 멀긴 했다.
결혼하고 십년을 넘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낳은 자식들이라 약간의 과보호도 있긴 했다.
키 순으로 줄서던 초등 때 내자리는 제일 앞이었다.
그 뒤 좀 자라긴 했어도 내 키는 평균을 밑돈다.
언니 키는 평균을 밑도는 내 키보다 더 작다.
나는 키만 작은 것이 아니고, 다른 건강도 별로 좋은 편은 아니었다.
늘 미열을 달고 살았고, 혈압도 혈당도 맥박도 건강수치와 거리가 멀었다.
그런 내 눈에  비실이로 보인 언니는 타고난 건강과 거리가 멀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런 비실이 언니에게 좀 수월한 인생이 주어져도 좋으련만 그렇지 못했다.
아래로 셋은 대학을 갔지만 언니는 중학교를 중간에 그만두어야했다.
학교에서 하는 낙랑공주 연극에서 주연을 맡은 것이 탈이었다.
그렇잖아도 뚜렷한 이목구비에 연극분장을 한 언니는 수많은 남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셀 수 없이 많은 남자들이 언니 뒤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우편으로 오는 연애편지도 어찌나 많던지 우체부가 고무줄로 묶어서 전해줄 정도였다.
가시내가 종아리 내놓고 뛰어다니는 꼴 못본다고 중학교 진학도 반대하던 할아버지가  앞장 서 결국 언니는 학업을 중단해야했다.
그래도 학벌 좋고 집안 좋고 인물 좋은 형부를 만나  언니 앞에 꽃길이 펼쳐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언니는 첫아들을 돌 무렵에 잃었다.
그 후 아이 둘을 낳아 키우는데 아이들이 중학교 다닐 때 형부가 혈압으로 쓰러졌다.
형부는 그 후 남은 반평생은 반신불수로 살았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기른 둘째가 대학교 4학년 때 사고로 죽었다.
몇 년 후는 언니가 대장암으로 투병을 해야했다.
삶의 끈을 놓고 싶었지만 반신불수의 몸으로 병간호하는 형부를 보면서 언니는 그럴 수도 없었다고 한다.
딸은 결혼해서 떠나고 형부도 돌아가시고 언니만 남아  독거노인이 되었다.

그렇게 가혹한 인생이 주어졌지만 언니는 지금 노익장을 과시하며 잘 살고 있다.
늙을수록 기력이나 능력이 더욱 좋아지는 것을 노익장이라 한다는데 그야말로 노익장이다.
칠십 다섯 나이에 성당 신도회장 노릇을 한다.
언니 만큼 해낼 사람이 없다고   못 그만두게 해서 계속 연임하고 있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 돌아다닌다.
성지순례를 갔을 때도 앞장서서 다니는 언니에게 사람들이 감탄했다고 한다.
젊은 사람보다 더 팔팔하니 무엇을 먹고 그리 건강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씩씩하게 사는 언니를 보고  자기네도  힘을 얻는다고 한단다.
무엇이 비실이 언니를 노익장을 과시하는 노인네로 변하게 했을까...

언니가 우리집에 놀러왔을 때, 아침마다 30분씩  스트레칭하는 모습을 보았다.
반신불수인 형부을 위해 시작한 것인데 그 효과는 언니에게 더 많이 나타난 듯 하다.
언니의 몸놀림은 젊은 사람 못지 않게 가볍다.
그 동안의 세월이 언니의 몸만 튼튼하게 한 것이 아니고 마음까지 강하게 만든 것 같다.
하긴 굳세지지 않았으면 그 가혹한 세월을 어찌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 세월을 살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하지만  언니의 얼굴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곤궁해도 굳세어야하고 나이들어도 건강해야한다는 것이 노익장의 또 다른 뜻이란다.
그런 의미에서 언니는 그야말로 노익장의 삶을 살고 있다.
언니가  이리 본을 보이니, 언니를 비실이라고 무녀리라고 놀리던 내가 질 수는 없다.
나이들어도 건강하고 어려움이 닥쳐와도 굳세게 이겨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