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초.
며 칠 동안 등쪽이 아팠습니다.
잠을 잘 못 잔 탓일까. 왜 이리 아프지?
며 칠 견디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지냈는데.
차도가 없었습니다.
등쪽이 아프니 내과도 아니고, 그래서 정형외과에 갔습니다.
왜 정형외과에 가서 x-선 찍을 생각을 했는지...
자초지종을 의사에게 말씀드렸더니
일단 사진을 찍어 보자 했습니다.
잠시후.
의사 선생님께서 부르시길래 들어갔지요.
"혹~시 결핵에 걸린 적이 있으십니까?"
"아~뇨"
"사진 속에 하얀 부분이 있어서요. 그 부분은 결핵을 앓은 흔적이거든요?"
"....."
"자세하게 보시려면 큰 병원을 가시던가,내과에 가면 정밀하게 찍는
엑스레이가 있거든요."
결핵?
난 그때만해도 결핵이 왜 걸리는지
그런 병이 무엇인지 정말 몰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해마다 사는 씰이 결핵 환자를 돕기 위한 것과
영양결핍으로 걸리는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네 내과에 갔다.
위가 아플때 가는 내과였다.
정형외과에서 가 보라 해서 왔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다시 x-선을 찍었다.
잠시 후.
들어오란다.
형광판에 사진을 바라보면서 의사가 말했다.
"심하네요.여기 저기 하얀 자국들이 결핵을 앓은 흔적인데..
심한 편입니다."
" 여기 저기요?"
"네, 한 번 앓으면 하얀 자국이 한 번 남는데, 여기도 있고 또 여기도 있고...
진행 중인지 검사를 해 봐야 겠습니다"
" 진행 중이라니요?"
"객담을 받아내시고 혈액 검사도 하시고.."
"............"
"힘들지 않았습니까? 무척 힘들었을 텐데... 숨도 차고,피곤하고,시근땀도 나고.."
"피곤하건 늘 피곤하니까 그런 줄 알았고.. 위가 늘 아프니까..그런 줄 알았지요."
그랬다.
난 피곤하고 힘들었다.
생각해보니
두달 전,기침을 심하게 했는데, 가래인줄 알고 뱉었는데 피였다.
놀랐지만 기침이 심해서 그런 줄 알았다.
검사를 마치고 결과가 며 칠 걸린다고 했다.
며 칠 후.
병원을 갔다.
잠시 후.
들어오란다.
"결핵이 진행 중입니다. 객담에서 균이 나왔습니다. 혈액검사에서도 그렇구요"
"..........."
"보건소에서 약을 육개월 정도 먹으면 됩니다"
"............"
"병원에서는 구개월 정도 먹으라 합니다"
".................."
병원에서 나온 후, 난
어디서부터 밀려오는 서러움과 억울함이 그리고 알 수 없는 그 무엇들이
나를 혼란하게 했다.
더듬더듬 생각해 봤다.
몸이 이 지경 될 때까지....
시부모님 모시며 아이 셋을 키우며
만성위염으로 십여을 넘게 살아왔다.
아픈 것이 결핵으로 아픈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유전적인 것도 아니다.
친정식구들은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늘 긴장하며 밥도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도 못하고
늘 위염으로 시달리면서 한 달에 한 번정도 몇 시간씩
토해내며 살아왔던 날들이 머리 속에 한 장,한 장 지나갔다.
말을 못하고 사니 몸으로 온 모양이다.
속으로 삭히고 끓이며 도리를 한다고
잘 살아 보겠다고 아내로서,엄마로서,며느리로서,책임과 의무를 도리를
해 보겠다는 것이....
2003년 2월-7월까지 보건소에서 약을 타다가 먹었다.
13알을 아침 공복에 먹었다.
하루 종일 약에 취에 잠을 잤다.
그렇게 두 달을 지냈다.
한 달에 한 번가서 약을 타오며
x-선을 찍고 혈액 검사를 했다.
균은 일 주일 약을 먹으면 죽는 다고 했다.
그래서 전염은 안된다고 했다.
약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 종일 잠을 자진 않았다.
그대신 잘 먹으란다.
고단백 음식을....
영양탕,추어탕,뱀탕 등등.
육개월 동안 무지 힘들었다.
시어머님과 아이들 셋,남편 뒷바라지는 계속되었다.
지금은 몸이 많이 회복되어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