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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그대의 서른 아홉살 생일에...1


BY 마리 2004-10-30

오늘 첫작품 인사올립니다... [그대의 서른 아홉살 생일에....]라는 제목의 소설인데요, 주인공 도희가 여성으로 성장해 나가는 일상들을 잔잔히 그려 보고자 합니다... 장편으로 이어질 지 중편으로 끝이 날지는 아직 잘 모르겠구요....마리, 님들의 가슴에 작은 단비가 되고자 합니다..... 첫곡은 방제에 맞는 연주곡 [해변의 길손]으로 첫 스타트 끊었습니다..... 좋은 인연 되길바랍니다.... 님들, 늘 행복만 하세요~~~~ ^^;;;

 

 

창가의 파키라 잎이 녹색물감을 덧칠해 놓은 것처럼 색깔이 짙어졌다.
도희가 큰길 네거리에서 사들인 피키라는 처음 올 때 콜라 스트로우처럼 작은 가지 다섯개가 또아리처럼 꼬인체 작디 작았다.
그 파키라를 처음 보았을 때, 도희는 존재가 갑갑해진 식물의 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작은 화분에 그것을 옮겨 심으려고 했을 때 식물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난, 홀로가 좋아요...이렇게 갑갑하게 칭칭 매여져 있고 싶질 않다구요...나를 풀어 주세요, 나를...아주 편안하게....'
도희는 그 식물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아기단풍처럼 아주 작은 잎새들..
식물은 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누구도 필요치 않아요, 우리 무리들을 풀어서 나를 홀로 다른 화분에 심어 주세요.
나는 혼자 있고 싶거든요....
베란다의 화분들 사이에서 이틀은 나고서야 나무들에게도 집을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유난히 눈길이 가는 어린나무만큼은 다로 독방을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 파키라에 어울릴만한 화분을 사기 위해 멀리 화원이 밀집해 있는 양재역으로 갔다.
혼자서 있어야 하는 나무도 있으리라.
사람에겐 옷이 날개이듯, 화초에겐 화분이 꽃을 빛내 줄 수 있는 옷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작은 파키라...그 식물에게 어울릴만한 예쁜 화분...
그녀는 화원이 즐비한 곳에 도착한 후 맨 앞에 있는 화원으로 들어갔다.
화원 안에서는 꽃들이 뿜어내는 향기와 어느곳에서 풍겨 오는지도 모를 습기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그녀의 코를 맴돌았다. 화원에서 풍겨 오는 냄새를 그녀는 매우 좋아했다.그녀는 그 자리에 잠시 서서 코앞에 풍겨 오는 신선한 향을 들이 쉬었다.
"찾는거라도 있으십니까?"
화원 주인으로 보이는 육십대의 남자가 흙 묻은 작업복을 털며 말을 건네 왔다.
"아, 나무를 옮기는 작업을 했더니 무슨 흙이 이렇게 묻어. "
나무를 옮겼다...나무가 이동을 했다는 이야기....
"나무를 이사 시키셨군요."
도희는 웃으며 말을 받아 다시 건냈다. 나무도 한번쯤은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을 것이다.
"이사요? 이사가 아니라 대방동 어느 부잣집 정원에 심을 나무를 배달 갔죠. 다섯그루 나무 심어 주고 온 겁니다. 말하자면 부잣집 정원 폼나게 꾸며 주고 왔단 말입죠."
남자는 화원 입구에 있는 미니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아 손에 쥐었다.
"한잔 하시겠습니까, 손님?"
한모금 마신 후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건을 살피는 도희에게 말을 붙였다.
"아뇨, 생각이 없습니다...신경 쓰지 마시고 드세요."
도희는 눈에 드는 화분을 찾기 위해 천정까지 쌓인 화분들 사이를 걸었다. 어린 파키라를 헤쳐 심으려면 다섯 개의 화분이 필요했다.
"집만 사면 이 짓도 그만 두려 했는데....맨날 흙 묻은 옷만 입고 다니니 사는 게 꼴이 아녜요."
혼자만의 독백인지 누구에게 흘리는 소리인지 남자의 말 어딘가에 푸념을 넘어선 짙은 허망이 베어 있었다.
"집만 있으면 뭐해? 돈이 나오는 구석이 있어야 살지."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마위의 순대가 한번씩 썰때마다 마구 뒤따라 나오듯 밖에서 화분 작업을 하고 있던 중년의 여자가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남자는 마시고 있던 커피잔을 든 체 아무말 없이 있다가,
"그래, 집 사달라고 해서 집 사줬어. 월세 빼면 된다고 해서 죽어라 일해 월세 뺐어. 한달에 월세 화원 수입 포함 오백만원 손에 쥐면 됐지 뭘 더 바래, 저 놈의 여편네 하고는..."
밖에선 잠시 잠잠한 듯 했다.
"어디 그뿐인가?  주식해서 일년에 한번씩 목돈 갖다 줘. 그러면 됐지.뭘 더 바래, 뭘?"
화분들 사이를 걸어다니며 마음에 드는 물건을 물색중인 그녀의 귀에 남자의 목소리가 뒷퉁수에서 그물망처럼 확- 하고 공중에 펼쳐지는 듯 했다.
"땅 사야할 거 아냐! 땅!"
"너는 나하고 사는 이유가 뭐냐? 돈하고 사냐, 나하고 사냐."
남자의 목소리가 공중에서 아래로 무거운 물건 떨어지는 소리로 변한 건 그 다음이었다.
"집만 있음 뭐해? 남들 다 있는 땅뙈기도 없이 뭔 낙에 살어! 안그래, 새댁? "
"집 다음엔 땅, 땅 산 다음엔? 지구를 살래?"
"사면 사지, 못살 거 있나?"
어느새 그녀는 그 집을 나와 다른 화원으로 걷고 있었다.
이제 막 초여름의 입구에 들어선 한낮의 햇살은 눈도 뜨고 있기가 힘들 정도로 찬란햇다. 도희는 눈가에 매달린 햇살이 시야를 흐린다고 생각했다.  두 집을 건너서야 제법 큰 화원이 나왔다. 그녀는 화원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지나온 그 화원처럼 그곳에서도 화초들이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육체의 깊은 곳 어디에서 뭔가 보이지 않게 집을 짓고 있는 상채기들이 일시에 소멸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조용한 음악이 화원의 내부를 흘러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신문에서 본 기사, 식물도 음악을 듣고 자라면 행복해진다...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