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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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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어디로가고 뱀만 나오나


BY 자화상 2008-09-04



여름 내내 꿩이 보이지 않는다.

늦봄까지도 이른 아침을 먹고 산에 오르면 숲이 시작되는 입구쯤 어디 풀숲에 숨어

"꿔엉! 꿔엉!" (내 귀에는 이렇게 들린다.)하며 나를 반겨 주었었다.

그러면 나도 '꿔엉아 반갑다. 오늘도 잘 지내라' 이렇게 큰 소리로 인사하고 혹시

꿩의 모습을 볼 수 있나 싶어 유심히 들여다보며 지나갔다.

그러는 내게 꿩은 인심을 쓰듯 어느 날 자신을 들어내 보여 주었었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내 눈앞에서 길을 가로질러 천천히 옆의 숲속으로 걸어갔다.

꿩의 깃털이 너무 아름다웠었다. 그래서 지나 간 자리에 한 참을 서서 기억에

담아 두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산에서 내려오다 혹시 어디서 꿩이 쉬고 있지 않을까? 하고

세세히 숲속을 더듬듯 찾으며 걸어가는데 신기하게도 꿩하고 눈이 딱 마주쳤었다.

숲속 나무아래 풀숲사이에서 영락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꿩을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안녕? 꿔엉아!' 하며 말을 건넸다.

꿩은 소리 없이 나를 계속 보고만 있었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꿩을 보면서 어디서 사느냐, 내가 이 시간에 지나가는

걸 알고 있느냐,

혹시 나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느냐, 왜? 내가 지나는 시간이면 소리내어 너가

숲 속에 있다는 걸 알려주느냐. 혹시 나하고 사귀어 볼 생각 있느냐.

등등 말을 붙여 보았지만, 멍하니 나를 보다가 옆으로 몸을 돌리면서도 눈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걸어서 숲속으로 사라져 갔다.

참 묘한 꿩이다. 정말 전생에 나하고 인연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었다.

그 후 몇 번 더 소리 내어 저 있는 곳을 알려 주더니 슬며시 사라져 버렸다.

여름내 꿩의 소리 한 번 듣지 못했고 그림자도 보여주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정말 궁금하고 보고 싶다.



청솔모는 버찌가 한창 무르익을 때까지는 벚나무 위로 멋지게 펄쩍 날아 올라가

맛있게도 버찌를 먹어 대었다. 산림에 유익한 동물이 아니라 하여 많은 번식은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노는 것 보면 귀여웠다.

길을 가는데 뭐가 톡 떨어져 위를 쳐다보면 아기 청솔모가 풋솔방울을 갉아먹고

찌꺼기를 떨어뜨리는 걸 볼 때도 있었다.

소나무에 해를 끼친다더니 그 말이 맞구나 싶었다.

그러던 아기 청솔모마저 여름동안 어디로 휴가를 떠났는지 나타나 보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궁금하다. 크거나 작거나 다들 어딜 갔을까? 하고.



약 3년 전엔가 우리 동에서 토끼를 산에 풀어 놓는 행사가 있었다.

그 때 두 번 산에서 뛰어 다니던 하얀 토끼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랬는데 올 여름이 되기 전에 힘들게 산길을 올라가는 내 눈앞에서 갈색토끼가 길을

따라 껑충껑충 뛰어가고 있었다. 토끼를 발견하고 신기해서 살금살금 따라가 보았다.

그랬더니 따라 오는 걸 눈치 챘는지 옆 풀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만히 다가가 저만치에

멈추어 있는 토끼를 발견하고 말을 걸어 보았었다.

신기하게도 토끼는 도망가지 않고 계속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마주보고 말을 붙여 보았다. '여태 어디서 살았니,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니,

정말 반갑다 우리 또 어디서 만날 수 있겠니?' 하며 말을 걸었지만, 토끼는 커다란

두 눈으로 나를 멀끔히 바라보기만 하였었다.

토끼가 먼저 이동해 가기를 바랐지만, 부동으로 있어서 아마 내가 먼저 자리를 뜨길

바라는 눈치인 것 같아서 먼저 안녕을 고하고 내 갈 길을 갔었다.

그 후로는 어디에서도 아직까지 그 비슷한 토끼도 만난 적이 없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매일 궁금해서 숲속을 보물 찾듯이 훑어보며 걷는데 오늘은 뱀을 만났다.

내 앞을 가로질러 가다가 내 걸음 소리에 놀랐는지 쏜살같이 옆 풀숲으로 숨어 들어갔다.

나도 깜짝 놀라서 '엄마야'를 외치며 뒤로 물러났다.

저만치서 아저씨들이 뭐냐고 뱀 나왔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대답해주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해 달려 나왔다.

같은 동물들인데 왜? 뱀은 그리도 무섭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내 남편도 뱀띠고 아들도 뱀띠인데 살아있는 뱀은 그저 무섭다.

가끔 들려주던 뜸부기 소리도 여름이 깊어지면서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꿩도 보고 싶고 산에는 불청객이라는 아기 청솔모도 한마리쯤이야 보여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 갈색 토끼는 이 여름에 어느 풀숲에서 깡충거리며 더위를 나고 있을까?

매일 산에 오르내리면서 작은 소리로 불러보았다. 다들 어디 갔니?



2007.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