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어렸을 적 눈이 머리위에부터 어깨 위까지 수북하게 쌓여서
걸어가는 눈사람이 되어 십리 길 초등학교를 다녀오던 날들.
바람은 또 왜 그렇게 세차게도 불어대던지 자그만 꼬마였던 나는
바람에 밀려 몸이 저절로 날아갈 듯 떠밀려 가기도 했었다.
그 추웠던 날들을 지금 다시 겪어보겠느냐 하면
나는 절대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부턴가 겨울이 겨울 같지 않아지고
그 매서웠던 겨울바람도 점차 희미하게 잊혀지고 있다.
그리고 바람과 함께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빨강색 잠바다.
지금은 오리털이지만 그 때는 폭신폭신한 스펀지가 들어있어서
두툼해 보이고 부드러워보였다.
그 잠바는 지금은 아동원이라고 하는데
그 때는 고아원이었던 곳에 살았던 친구들이 입고 학교를 다녔었다.
우리들은 스웨터를 입었는데, 스웨터는 바람이 송송 들어오는데
그 잠바는 모자까지 달려 있어서 머리부터 허벅지까지
바람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되어 보기만 해도 따듯해보였었다.
그렇게도 우리들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던 바람이
그 친구들의 잠바에는 부딪쳐 미끄러져
비껴가는 소리가 들려 올 정도였다.
정말 그 때는 그 잠바를 너무너무 입어보고 싶어서
나도 그 친구들과 살았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그 후 자라면서는 그렇게 견디어내기 힘들었던 바람을
별로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벌써 봄이 왔다.
사흘 후면 경칩이다.
이제 꽃샘바람만 지나가면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겠다.
세월이 바람에 밀려 자꾸만 추억을 흘리고 간다.
200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