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여자가 아니야. 치마 입은 걸 본적이 없어. "
세상에 남편이 내게 여자가 아니라고 했다.
어제 밤 열심히 팔을 흔들며 걷다가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치마를? 그러네~"
내가 치마를 입어 본지가 언제였던가. 속으로 헤아려 보니
몇 년 전이었는지 가물가물 하였다.
정말이네. 그러고보니 난 바지만 입고 살았네.
난 바지가 편하다. 그래서 모든 평상복도 외출복도 바지뿐이다.
두 해 전에 조카 결혼식에 치마 입고 오라고 동생이 치마 정장을
보내 주었는데도 거추장 스러워 바지 정장을 입었다.
이러다 딸이 결혼할 때도 바지 정장 입을려나?
아마 바둑을 삼사십년이 넘게 두며 살아오다 보니 성격이 남성에
가까워져 버린 것 같다.
그래서 요리도 집안 살림도 취미가 없었을까?
하긴 친정에서부터 여자들이 음식 준비할 때 난 어른들과 바둑을
두고 있었으니까.
그 때부터 여자이기를 포기한 것 같다.
그랬으니 새삼 여자가 아니라는 말 한마디에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
보았더니 그 말 들어도 싸다는 결론이 나온다.
말씨도 고분고분 안하지. 웃음소리도 남자처럼 하하하 웃지.
머리도 짧게 자른 걸 좋아하지.
하찮다고 생각되는 일은 건성으로 넘어가지.
오죽했으면 나 입을 옷 업다고 하면, 남편이 장농 어디서 찾아주고,
여름 신발이 없다고 하면, 딸이 신발장에서 찾아 주었을까.
그런데도 왜? 깨닫지 못했을까?
여간해서는 내게 무시하는 말을 안 하는 남편의 입에서
결혼 후 처음으로 여자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랬었네.
반성해야겠다. 그래서
오늘 당장 계절 옷 정리부터 해야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장마 비가 지나가서 집안이 습기가 많은 핑계로 나의 게으름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여자들은 집안에서 할 일이 이렇게 많은지...
아, 퇴근하고 돌아오면 밥상이 차려져 있고.
매일 집안 곳곳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고.
내 마음대로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시원한 대청 마루에서 바둑한 판 두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러니 난 나이 오십이 되어도 여자가 아니라는 말이나 듣나보다.
. 200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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