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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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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없는 당신께


BY 자화상 2005-11-30

고속 열차가 드나드는 터널 부근을 산책하며

어느새 바람이 서늘하다 하더니,

당신은 아직 꿈꾸고 있는 탐스러운 소국 화분 하나 서둘러 들여 왔지요.
드디어 4주만에 노란 꽃잎들을 앙증맞게 밀어내고 있네요.

시아 아빠
퇴근길에 당신이 먹어야 할 귤을 한봉지 사들고 왔더니

당신은 나를 위해 단감을 사러 과일 공판장까지 가서

맛을 보고 살짝 떫은 맛이 나며 단단한 걸로 고르니

아주머니가 눈치 주더라며,

 

귤은 살까 말까 하다가 비싸서 안샀다는 말에,

나는 귤을 사고 당신은 단감을 사고 우린 천생 연분이라며 웃었지만 ,

마음 한편 고맙고 미안하고 행복해요.

요즘은 누가 누구를 위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다시 찾아 온듯한 평화에 그저 감사하고 있어요.

당신의 시계가 2년전의 건강했던 시절에서 마법에 걸려 멈추었는지,

하루 아침에 직장암 환자가 되어 항암치료와 수술 ,

그리고 복원 수술까지 여섯계절을 힘들게 살았던것 같은데,

 

꿈이었나 싶도록 잊혀져 요즘 이렇게 몸과 마음이 한가해졌고

당신이 아직 불편한 몸이지만 회사에 출근하고 우리 가족의 기둥으로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어 멈추었던 시계도 다시 째깍째깍 평화를 주니

집안 가득 웃음이 나서 정말 좋아요.

시아 아빠.
당신 복원수술하고 3개월이 지났는데,

운동과 외출시에도 잦은 용변으로

자꾸만 화장실로 달려가는 뒷 모습을 볼때면 측은하고 짠해 보여서

울컥 눈물이 나올때가 많지만,

 

투병중에 힘들었던 때에 비하면

요즘의 상태 정도야 감당할수 있으니 불행중 다행이라 오히려 고맙고 감사해요.

당신은 내게 미안해 하지만 내가 더 미안하고 미안해요.
남들 보약이며 건강식을 챙길때에

당신은 오십평생 건강할거라 믿고 암 보험도 적은것 하나 들어 놓고

 

설마하는 의심도 없이 살았던 내 무지함이

당신을 암에서 지켜내지 못했으니

아내의 자격도 없는 내게 미안해 하지 말아요.

항암치료때 손과 발바닥이 부어 터져서

두겹이나 껍질을 벗겨내며 아파하는데

난 속으로만 울었고, 장루 비우느라 단잠을 설쳐댈때

잠자는 척 하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구토증으로 식사를 못할때 나마저 쓰러지면 안되니까

억지로 음식을 내 입에 넣어야했던 마음 아팠던 일들을

어찌 다 잊을수 있겠어요. 그 고생이 다 내 탓인것만 같아

정말 미안한 나날이었어요.


지나온 투병 2년의 세월보다 살 수 있는 남은 세월이 더 많을테니

우리함께 희망의 노트로 새롭게 인생을 꾸며 갑시다.

시아 아빠

2년후면 시아가 임용고시 응시하여 기쁜 소식을 줄것 같고

호야도 원하던 대학에 들어 갈테니

 

우리가 굳굳하게 살아내서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줍시다.

그리고 둘을 결혼시키고 나면

우리 옛날처럼 목적지 없는 여행을 다녀오고 싶은데

당신도 같은 생각 할 거라고 믿어요.

벌써 또 우리 가정에도 가을이 내려와 국화 화분에 머물러 있잖아요.
이렇게 해를 거듭하면 당신은 분명 천수를 다 할 수 있을거라 믿어요.
내년 가을에는 소국 화분을 두개 들여 옵시다. 하나는 외로워 보여요.

이제 그만 쓸께요. 당신 점심 준비할 시간이예요.

 
우리에게 오랜 세월을 이렇게 같이

점심 식사 할 수 있는 행복이 주어질거라고 믿으면서 희망을 가져봅니다.


사랑해요 당신.


2005.10.22.


당신만을 사랑하는 둘없는 그림자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