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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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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은 피었는데


BY 수 홍 수 2005-08-08

 


백일홍은 피었는데.......


골목길 오동나무 잎은 넓을 대로 넓어졌다

중복이 지나면 귀뚜리는 틀림없이 울어댄다

매미가 유난히 시끄러운 것은 여름이 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네들은 달력을 보지 않고도 여름인지 가을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인 나는  달력을 보기전엔 알지못하지만

저녁을 먹고 학교운동장으로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나간다

학교는 왜 그렇게 높은 곳에다 짓는지..........

 운동장에서 본관 건물을 들어가려면 항상 언덕길이다

 

할머니의 다리는 휘었고 걸음은 늦었다

평평한 운동장보다 오르막인  본관 언덕길이 운동이 더 되는 것 같다며

천천히 올라오신 할머니 한분이 본관 옆 꽃밭에 활짝 핀

백일홍무리를 보고 자리를 잡으신 뒤 꽃무리를 한참을  보고 또 보시다가

 행여나 꽃잎이 다칠세라 살살 쓰다듬으며  무심코 노래를 부르신다

   지금 아이들이 부르는 곡보다는 더 느리고  정겹다

 “나의 살돈고향은 꽃피는 산굴 복숭아꽃 살구꽃 애기진달래

울것 불것 꽃동네 채리인 동네 그곳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조용조용 부르는 노래 속에는 할머니의 옛날이 있을 것이다

 연세는 팔십세 이쪽 저쪽이실 것같고  짧은 커트머리에 검버섯은 피었지만

 이 순간 부르는 노래 속에는 옛날 첫사랑도 있고 소꿉친구도 있고

 엄마 아빠도 계시고 담 밑에 봉숭아 손톱물들이던 시절도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운동장을 대여섯 바퀴 돌고 자전거를 십여분이나 탔는데도

 할머니는 검붉어지는 하늘을 보며 조용조용 노래를 하시면서...........

오랫동안 백일홍을 바라보고 쓰다듬고 계셨다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