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공원은 십수년 전이나 현재나 변함이 없었다.
공원 입구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노(老)화가나, 파출소 초소에서 길 잃은 여행객에게 친절하게 손짓발짓으로 안내를 하는 미소를 머금은 순경이나, 그리고, 호기심으로 기웃거려 봤던 성인극장의 간판......
일요일 한낮의 햇살은 12월 중순의 동장군을 비웃으며 스팀의 따사로움처럼 목덜미를 덥혀 주어 한결 공원 산책하는데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공원 입구로 들어서자 12월 중순임에도 지지 않은 꽃들이 빨갛게 피어 있어 놀랬다. 알 수 없는 꽃 이름이지만 겨울에 꽃을 구경할 수 있다는 사실이 타국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주는 듯했다.
공원 안쪽으로 들어서자 많은 인파들이 북적였다. 공원 내에 있는 도쿄국립미술관과 도쿄국립박물관, 그리고 우에노 동물원에 들른 인파들일 것이다. 어느 외국인의 거리 공연은 인기를 더했다. 빙 둘러서 구경하는 틈으로 섞여 구경하니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인형극을 하는 어릿광대의 모습이었다. 분명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복장였지만 단지 호기심만으로 사람이 모인 것이 아님을 그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서야 믿음이 갔다.
유럽 고풍스런 어느 거리의 악사처럼 애절한 연주를 하는 그의 연주실력은 클레식 초보인 나로서도 빨려들어갈 정도로 감탄스러웠다.
가끔은 코믹한 액션과 인형극으로 관람객들을 웃게도 만들고, 서툰 일본어를 섞어가며 유머를 토해내는 그의 열정은 내게 있어서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거리 악사를 뒤로 하고 공원 내에 있는 연못으로 갔다.
10년이 훌쩍 넘은 세월동안 연못에는 정말 많은 연꽃들이 빼꼭이 채워졌다.
언듯 보기에는 갈대숲 같은, 정말 분위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가막혔다.
연꽃이 활짝 피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카메라를 눌러대고, 때로는 작품사진을 찍는지 전문가용 카메라를 한참이나 들이대며 사진찍기에 열중인 사람도 눈에 띄었다. 도심 한 복판에서 피곤에 지친 심신을 맡길 풍경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한참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넋을 잃었다.
점심 때가 되어서 그런가 햄버거나 도시락을 가지고 와서 연못 벤치에 앉아 먹는 사람도 있었다. 따뜻한 햇살로 그리 춥지는 않았지만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일본의 바람은 그래도 춥기는 할 텐데 한겨울에 공원 벤치에서 한 끼의 식사를 때우는 샐러리맨을 보니 안스러워보였다. 이미 습관이 된 듯, 남의 눈치를 본다던가 머뭇거림 없이 오자마자 꾸러미를 풀고 앉아 있는 바로 내 옆에서 꾸역꾸역 식사를 했다.
그래도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북적거리며 먹는 맛에 비하면 꿀맛일 터......침이 고였다.
우에노공원의 맨 안쪽으로 가면 큰 분수대가 있다.
분수대를 중심으로 뺑 둘러서 벤치가 놓였는데, 책을 읽는 노인, 애견과 산책을 나온 듯한 아주머니, 소풍을 온 것일까? 단체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였는지 차가운 바닥에 철퍼덕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있었다. 나도 피곤함을 쉴겸 나무그늘이 없는 벤치를 잡아 앉았다.
아름드리 벚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한참이나 올려다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갑자기 하얀 턱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외국인 노인이 가슴팍까지 웃옷을 올린 채 조깅하듯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히쭉 웃어가며 내달리고 있었다.
우에노공원에 가끔 유별난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긴 했어도 서양인이, 그것도 젊잖아 보이는 노인이 가슴까지 웃옷을 걷어 올린 채 흰수염을 날리며 달리는 모습이란......
잠시 노인의 괴한 행동에 피식 웃는 사람, 시선을 띄지 않고 노인을 쫓는 사람, 관심 없다는 듯 딴전을 피는 사람, 그래도 괴한 그의 행동은 단연 인기(?)였다. 좋은 눈요기였으리라.
약한 열을 내뿜는 스팀처럼 겨울 한 낮을 따사롭게 해주던 햇살이 서서히 기울자 사람들도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기가 오삭오삭 느껴지는 것이 몸도 뎁힐겸 미술관으로 갔다. 사람들이 다 어디갔나 했더니 미술관으로 모였나보다. 정말 많은 인파들로 입구부터 바글거렸다. 무료관람하는 전시회를 잠시 돌고 돌아나왔다.
몸을 실은 야마노테선(山手線) 전철이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일본에서의 한 주의 피곤이 졸음으로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