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결혼을 하고 해본 일들 중에 집안을 가꾸기 위하여 선인장부터 알로에 그리고 난 등 여러 가지 잘 키우면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는 종류도 있었으나 화분에 물을 주고 햇빛을 보여주며 사랑을 담은 영양제를 주는 일들에 적합한 내가 아니기에 오랜 기간 화분들을 키워보지 못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볼 때면 아까운 화분들 죽이지 말고 집에 가지고 오면 잘 키워 준다며
‘화분은 아무나 돌보는지 아니? 쳐다보면 그게 알아서 크는 줄 알아? 그러게 처음부터 집에다 두지를 말지........ 괜히 섞어버리고 아깝지도 않니?’
결혼을 선택했을 때 엄마는 나와 남편이 동갑내기라는 이유로 조금은 반대 하셨지만, 결혼식이외에 혼수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엄마이기에 다른 엄마들처럼 발 벗고 말리지는 않으셨다. 그래서일까 어쩌다 엄마는 내가 남편과 조금 맞지 않은 부분이 있기에 다투고 난 후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내가 뭐랬니? 동갑은 힘들다고 잘 생각하라고 했지. 이제와 후회하면 뭐해? 후회해도 이젠 늦었어. 어째 참고 살아야지!’
난 지금의 생활에 후회한다고는 엄마를 잡고 말 한 적은 없다.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것도 결혼 생활 중에 한 부분임을 이제 알았기에 선배로써 조언을 듣고 싶었을 뿐인데 너무 먼 곳까지 바라보시는 엄마는 결혼 생활을 오랜 시간해서 그런지 몰라도 후회란 단어를 적합한 시기에 사용한다기보다는 자주 사용하시는 것 같다. 엄마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후회란 말을 많이 되새기면서도 결혼 생활을 지키고 계신다. 아마도 그 이유는 아직 군대에 있는 하나 뿐인 아들 때문에 아닐까 생각한다.
길가를 지나다보면 피어 있는 꽃과 나무, 잡초를 볼 수 있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 나무가 더 높이 뻗기 위하여 무성한 잡초가 넘치지 않게 누군가가 돌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난 남편이 생일 선물로 장미꽃을 선물해 주면 향기를 느끼며 그 순간은 좋아하지만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많이 반기지는 않는다. 장미꽃이 하루사이라도 시들고 나면 버려야 한다는 것이 싫다. 누구도 그 시든 장미를 버려주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엄마와 함께 살 때는 선물로 받은 꽃을 집에 가져오면 엄마는 꽃을 병에 꽂으며 좋아하셨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 내가 직접 사다 드리지 못한 맘에 조금은 미안했지만 그렇게라도 꽃을 집에 둘 수 있는 것이 좋은지 엄마는 장미를 일주일정도는 내가 출퇴근 시 볼 수 있도록 현관에 놔주곤 하셨다. 그때는 꽃이 이렇게 오래 시들지 않는 이유가 엄마의 정성으로 보살핌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꽃을 꽃병에 두었기에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꽃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엄마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장미를 이 틀 만에 버려야 할 때 남편은 말려서 디스플레이를 해보라며 권했으나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도 엄마였다면 꽃병에서 일주일이 지나 아름다움을 다한 꽃을 쉽게 버리지는 못하고 말려서 어떻게든 집안에 두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엄마와 나의 차이가 아닐까?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엄마와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도 인정하지 못하는 나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엄마와 가르쳐주지 않으면 알 수도 없는 나
그래도 내가 엄마보다 잘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아마도...그건...
한글을 더 잘 읽거나 영어 단어를 조금 알 뿐 현실적인 면에서는 엄마를 따르지 못할 것이다. 왤까.......
어젠가 엄마는 왜 엄마 일까 궁금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유진이를 낳기 전까지는 모든지 해 주는 사람이 엄마라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딸이 생기고 그 딸이 너무 이뻐서 나 역시 모든지 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도 역시 엄마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지만 나를 따르는 나를 믿는 한 아이가 있기에 난 이제 엄마다.
요즘 딸아이는 길가를 다니다 보이는 꽃이나 나무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나는 우리집 안에서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신기함이라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요즘 조화라도 꽃을 집에 장식을 해보라고 한다. 나 역시 조화는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딸아이 유진이는 조화와 생화의 차이를 아직은 알지 못한 거 같다. 그래서 아직은 거리에 있는 예쁜 꽃과 나무를 보게 해주려 한다.
난 유진이를 위해서라도 꽃을 키워볼 맘이 들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유진이를 위해서 꽃을 키우고 그 꽃을 유진이에게 나의 엄마가 해준 것처럼 해 주고 싶다.
아마도 유진이가 자라면 이런 행동을 모두 이해 할 수는 없겠지만 언제가는 꼭 이유없이 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난 꽃을 가꾸는 시간을 예전에 날 위해서 해주시던 엄마의 손길을 생각하며 한 집에서 생활하며 모든 해주던 그 시간을 추억하며 유진이를 위해 할 것이다.
오늘은 엄마가 정말 그립다. 지금쯤 엄마는 자식의 빈자리를 화분을 키우며 시간을 보내신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외롭지 않다고 하셨다.
엄마를 자주 보지 못해 조금은 아쉽지만 나에게 이렇게 엄마의 자리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실 수 있는건 역시 우리 엄마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엄마로써 해준 것처럼 나 역시 조금은 옛 방식과 다를 수 있겠지만 유진이에게 여자라면 걸어야 하는 길 엄마에 대해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