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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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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BY 하나 2005-01-13

내 고향집은 담장이 낮다.

단지 큰 길과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대문도 그다지 튼튼해보이지는 않는다.

적갈색 대문을 열면 구불구불한 길이 남루한 마당 한켠을 가른다.

담벼락에는 호미가 추녀밑 비를 피해 바짝 옹크리고 걸려있고

왼쪽의 텃밭이랄 것도 없는 좁은 흙마당에 지금은 김치깡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름내내 풋풋한 고추를 따고 상추를 따먹던 그 손바닥만한 밭이 이제는 김치독에 자리를 내주고 추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좁다란 마루에 비닐 장판이 깔리고 그 아래 식구들의 신발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많은 식구만큼 신발도 가지각색...벗어놓는 모양도 제각각으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신발 정리는 늘 엄마 몫이었던것 같다, 일할 손이 많았음에도....

아무리 엄마가 신발 좀 예쁘게 벗어놓으라고 해도 잔소리 듣는 그때뿐, 언제 그랬냐는듯 신발들은 여전히 뒹굴고 있었다.

가끔 막둥이는 신발을 신은채로 방에 들어오기도 했었다. 막둥이만의 특권으로.......

겨울 시린 바람이 불면 신발들은 주인 못지않게 호사스런 생활을 했다.

방문 첫머리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식구들 신발을 들여놓았던 건 엄마다.

겨울의 아침은 그때나 지금이나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손발을 얼어붙게 한다.

밥 먹는 것과 잠자는 것, 텔레비젼 보는 것 등의 몇몇가지 일들을 빼고는 대부분의 일들이 밖에서 이루어졌던 어린 시절이었다. 화장실도 마당한켠에 있었고, 집안에 지금처럼 컴퓨터나 게임기 등이 없었기에 어린시절의 모든 놀이문화는 바깥에서 이루어졌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아파트처럼 신발이 실내에 놓이는 일은 결코 없었는데

유독 찬바람 불던 겨울엔 이른 아침 학교가는 5남매와  출근 하는 아빠의 신발이 따스하라고, 발 시리지 말라고 전날 밤 방안에 신발을 들여놓고서야 잠을 청했던 엄마..

한 겨울 방문 바로 곁 신문지 크기만큼의 자리,

거긴 엄마의 사랑으로 늘 아랫목처럼 따스하던 자리였다. 

유일하게 남루한 신발들이 호사스러움을 누리던 자리였다.

오늘 아침도 여전히 강추위라고 한다. 신발이 차갑지 않다.

더이상 우리식구들의 신발은 추위에 몸을 떨지 않는다.

따스한 온기가 가득한 집안에 현관이 있으니....

하지만...

고향집의 신발들은 오늘 아침에도 그 자리에서 아빠를 엄마를 할머니를 동생을 기다렸겠지.

밤이되면 엄마는 또 여전히 그 자리에 식구들의 신발을 들여놓을터...

어릴 때 엄마가 밥을 해서 제일먼저 했던 일은 아빠 밥을 담아 아랫목 이불에 묻어두는 것이었다. 아랫목에는 밥공기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던 셈.. 지금은 항시 보온이 되는 보온 밥통에 자리를 빼았겼지만...

그러고 보면 우리집엔 참 자리들이 많았던것 같다.

그 자리엔 늘 사랑이 온기처럼 깔리고 말이다.

나는 어떤 자리를 만들어볼까 집안을 두루두루 살펴본다, 이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