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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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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욕심그릇은 깨지지도 않네.


BY 하나 2004-11-04

올해 처음 학교라는델 간 큰 아이, 일주일에 한번 도시락을 싸가지고 간다.

누구한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닌데 도시락 쌀 때마다 왜 그리도 반찬에 신경이 쓰이는지 원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그냥 녀석이 평상시 잘 먹는 반찬, 좋아하는 반찬을 담아주면 되는것을 내 욕심에 못이겨

모양에 신경을 쓰고, 재료에 신경을 쓰고, 이른 아침부터 생야단을 떨고서야

도시락이 준비된다.

"찬아, 미안해...어제 엄마가 장을 못봐서 반찬이 별로네."

"괜찮아요 엄마. 전 엄마가 싸주시는 게 세상에서 젤 맛있어요."

"그래, 고마워...점심 맛있게 먹고 와!!"

그것이 무엇이든 엄마가 만들어 주는게 세상에서 젤 맛있다고 하는 기특한 녀석, 엄마의 기를 살려줄 줄 아는 애어른 같은 녀석...

 

나 어릴 떄 우리 엄마도 도시락 쌀 때 이렇게 신경을 썼었던가?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 도시락 싸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엄마가 주신 동전을 들고 집 근처 슈퍼를 뛰어갔다 오던 기억이 생생하다. 까만 윤이 잘잘 흐르던 콩장이며, 빨갛게 양념된 오징어채볶음이 작고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긴채 아침마다 분주히 팔려나가고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200원만 내면 그런 반찬을 살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운이 좋은 날은 오뎅볶음(어묵볶음)이 반찬으로 등장했다. 집 근처에 오뎅공장이 큰게 있었는데 저녁 무렵에 가면 파치( 흠집이 나거나 해서 상품가치가 없는 오뎅들) 즉, 모양이 불량인 오뎅들을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는데, 올망졸망 식구들이 많았던 우리에겐 요즘의 대형 할인마트 같은 그런 곳이었다.

보온 도시락은 상상도 못했었지...겨울엔 차가운 도시락을 3교시부터 교대로 난로위에 올려놓고 뎁혀 먹었던 기억들...김치를 반찬으로 싸 가지고 간 날은 흔들리는 가방안에서 김치국물이 흘러 교과서 언저리를 붉게 물들였던 기억...가방안에선 김치냄새 진동하고, 김치 국물이  하얀 밥에까지 침범을 했던 기억, 점심 시간이 되어 도시락 뚜껑을 열면 엄마가 언제 넣어두셨는지 노릇노릇한 계란 후라이가 한눈에 들어왔던 기억, 그래서 더없이 행복했던 점심시간의 기억들...

 

옛날 추억에 젖어 큰 아이 도시락 쌀 때 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었더니 남편은 '요즘 애들이 그런걸 좋아하냐'며 살짝 타박을 준다.

가방을 메고 뛰어왔는지 녀석의 가방 속은 어지럽다.

도시락을 꺼내어본다.

어?  밥이 거의 그대로네? 밥을 안 먹었나?

녀석에게 물어본다. 아침부터 수선을 떨며 계란을 삶고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갈라서 간장조림을 해줬는데 그 반찬은 온데간데없고 밥은 그대로다.

녀석의 말인즉슨, 다른 분단에 앉은 친구가 그 반찬을 보더니 먹겠다고 다 집어갔단다.

그 아이는 김밥을 점심으로 준비해왔는데, 안된다고 했음에도 그 아이가 반찬을 모두 가지고 가서 자기는 밥을 못먹었단다.

입맛에 맞는 반찬이 없어졌으니 점심 도시락을 조금만 먹고 그대로 남겨온거다.

다른 한가지 반찬은 입에 맞질 않고...

그 얘길 듣고 어떻게나 화가 나던지...

반찬 집어갈 때 왜 큰 소리로 제지하지 못했느냐고 어느새 녀석에게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가.. 내 욕심그릇을 이기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입이 짧은 우리 아이를 탓해야지...

나 어릴 때도 교실에 그런 괴짜 아이들 한두명 있었지 않은가.

괴짜들에겐 영락없이 반찬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면서 크는건데, 니 것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느냐는 말로 아이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다.

금방 후회할 말을, 돌아서기가 무섭게 가슴 칠 행동을 하고 말았다.

찬아, 미안하다.

엄마는 왜 이렇게 엄마 입장만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잠자기 전에 녀석에게 화해의 말을 건넨다.

"찬아, 아까 엄마가 화낸거 미안해...근데 엄마는 찬이가 조금 씩씩해졌으면 좋겠다.

물론 반찬은 친구들이랑 나눠 먹어야하지만, 친구가  반찬 집어가면 너도 친구 반찬 좀 달라고 말할 줄 알았으면 좋겠어. 이해할 수 있어?"

"그럼요 엄마...걱정마세요."

걱정말란다, 무엇을?

엄마로 살면서 욕심그릇은 점점 커지고 쓸데없는 걱정들도 아울러 늘어감을 느낀다.

아이 스스로 잘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걱정말란다...그래, 걱정 안해..그런데도 매번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구나, 엄마는..

아이 스스로 적응하는 법을 터득하면서 커 갈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자꾸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를 끌어올리려고 한다.

이놈의 욕심그릇은 깨지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