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장을 보러 재래시장에 갔다가
그곳에서
추억의 칼을 발견한다.
변변한 가게도 없이 자판도 없이 누런 빛 스테인레스 그릇에 고사리며, 토란이며, 도라지를 파는 어느 할머니의 손에서...
도루코 면도칼...
이름이 맞나 모르겠다.
학교 다닐때 그 칼로 연필을 깎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나의 아이는 자동연필갂기로 연필을 깎는다. 연필을 장착하고 오른쪽 손잡이를 두세번 돌리기만 하면 금새 연필심이 침처럼 뾰족한 그런 연필들이 만들어져나온다.
도루코 면도칼로 연필을 깎으려면
왼손으로 연필을 부여잡고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몇번이나 올렸다 내렸다 해야했는지...
열대여섯번의 손동작을 거친 후에도 마지막에는 왼손으로 연필을 곧추세우고 시선을 고정시킨채 조심조심 칼끝으로 연필심을 긁어내야 끝이 조금은 뾰족한 그런 쓸만한 연필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칼자루는 까만색이고, 그 가운데 홈이 파여져 있어 칼날을 접으면 자루속으로 쏙 들어가던 그 칼...총 길이가 10센티정도나 되었던가?
필통속에 항상 그 도루코 칼이 들어있었는데...
추석장 보러갔을 때 할머니가 입으로는 연신 고객을 붙들면서
손으로는 부지런히 도라지를 좀더 가늘게 쪼개고 있었는데
그때 할머니 손에 들려있던 칼이 바로 그 도루코 면도칼이었다.
아직도 그 칼이 있구나...
내 서랍에도 칼이 있다. 하지만 그런 도루코 칼은 아니고 요즘 흔히 쓰는 카터칼이다.
카터칼은 칼심이 부러지면 똑똑 잘라내고 쓸 수 있다.
한참을 쓰다보면 결국 칼심이 두칸 정도 남아서 쓰기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는 칼심을 새로 바꿔끼워야한다.
며칠전에 새로 칼심을 바꿔 끼웠다.
칼날이 무섭다. 조금만 종이에 대도 종이가 슥 잘라져버린다.
그런데, 새 것이라고 다 좋은건 아닌가보다.
먼저 쓰던 칼은 곳곳에 녹은 좀 슬었지만 적당하게 잘 들었었다.
종이를 반으로 접고 그 사이에 칼을 비스듬하게 넣고 자르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깨끗하게 종이가 잘려진다.
그런데, 새 칼은 접은대로 종이를 자르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잘라버리기 일쑤다.
칼이 너무 예리한 탓에 주인말 듣지 않고 제멋대로 가버린다.
무딘 칼이 아쉽다.
너무 예리하고 날카로우면 안되는 거여.
적당하게 무뎌야 오히려 잘 잘라지던 칼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할 터...
너무 날카로우면 주변 사람을 벨지도 모르니
적당하게 무디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야할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