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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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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 왼손


BY 하나 2004-09-21

작은 녀석이 공을 가지고 놀다가 공을 잃어버렸다.

찾아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텔레비젼 받침대 밑으로 공이 들어갔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두컴컴한 받침대 밑을 들여다본다.

어둠에 익숙치 않은 눈, 보이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걸린다.

저 끝에 연두색 공이 보인다.

손이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른손을 뻗는다. 공은 쉽게 나온다.

매일 걸레질을 하는데도 저 밑엔 먼지 덩어리가 뒹군다.

바퀴벌레는 먼지를 먹고 산다고 하는데...바로 내 발밑에 바퀴벌레의 음식이 뒹굴고

있었구나..

우리 네식구, 밤새 그 먼지를 다 마시고 자는 건가?

수박 겉 핥기 식 청소를 했음이, 내 손이 야물지 못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오른손가락 구석구석마다에 거무티티한 먼지얼룩이 묻었다.

작은 녀석이 한사코 욕실로 따라들어온다.

왼손으로는 녀석의 오른손을 잡고, 나는 꾀를 내어 오른손으로 수도꼭지를 틀고 물에 손을 댄다.

엄지손가락 덕분에, 엄지손가락으로 둘째 셋째 넷째 손가락을 비비니 그 손가락들 제법 깨끗해진다. 하지만, 손가락 등에 묻은 먼지얼룩은?

엄지손가락이 닿질 않는다.

비누칠도 고양이세수에 불과하다.

새끼 손가락 끝엔 엄지가 제대로 닿질 않는다.

왼손이 필요하다.

왼손과 오른손을 마주 비빈다.

이전보다 깨끗하고 말끔하게 씻어진다.

이런 조화로구나, 이런 조화를 예상하고 신께서는 오른손과 왼손을 만드셨구나.

나는...나는....

오른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사는가,

아니면 왼손으로 사는가?

"엄마!!!! 뭐해요?"
양치질 하러 들어오던 큰 녀석이 우두커니 섰는 나를 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