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장편소설 "외딴방"을 읽고 난 아침에...
2004년 9월 14일 화요일…
여러 사람들이 그 미덕을 지적해왔지만 나는 신경숙의 “외딴방”을 90년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외딴방은 작가 자신이 한 시대에 “생활”로 겪은 바를 나직한 음성으로 들려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글쓰기”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는 이중구성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고향을 잃고 대도시에 나와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서도, 이유도 모르고 고통을 받던 얼굴 없는 사람들의 삶을 또렷하게 형상화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아닌 예술가인 작가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내야하는가를 고뇌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가 황석영님의 평론 중에서…
여러 평자가 이미 지적했듯이 외딴방은 독특한 형식 실험을 수행한 소설이고 그 중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외딴방 시절의 과거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집필하는 나의 현재 시간이 교직되며 진행된다는 점이다. 또한 이 짜임에서 과거는 현재형으로, 현재는 과거형으로 서술된다는 특이한 사실도 주목을 끈 바 있다. 물론 이것은 작중의 나도 의식하고 있을뿐더러 의식적으로 결정한 서술전략이기조차하다.
외딴방의 주된 이야기는 나가 유신말기에 구로공단에서 일하면서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니던 삼년 남짓의 세월에 관한 것이다. 그 서사를 촉발하는 계기는 당시의 학교 친구 하계숙이 지금은 유명한 소설가가 된 나에게 어느날 전화를 걸어온 일이다. ….
----문학평론가 백낙청, 서울대 영문과 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인…
이 책을 읽는데 꼬박 이주일이나 걸렸다. 요즘의 일상이 더욱 그렇듯 읽을만한 그 자투리 시간에도 설거지며 빨래, 다림질, 아이 재우기란 이름을 가진 놈들이 어느새 자리를 차지해 더는 어쩌지도 못하게 내 손을 묶고 있으므로…
외딴방으로 들어가기전,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90년대의 대표적 소설이라 청소년 권장도서로도 읽히고 있다고 들었었다.
이제껏 읽은 소설과 다르게 독톡한 문체가 신선하다.
평론가들의 말처럼 작가는 과거를 말할 때는 현재형으로 말하고, 현재를 말할 때는 과거형으로 말했다. 열다섯에서 바로 스무살이 되었다고, 내게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은 없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과거를 현재형으로 말함으로써, 조금전의 일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과거를 생생하게 말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니 소설을 읽었어. 근데 너는 우리 얘기는 안하는 것 같더라”고 어느날 그시절의 친구 하계숙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에도 가슴이 아플지언정 한마디 변명의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소설속의 나는 그 시절을 잊지 않았음을, 그 시절도 행복이었노라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는거라고 현재형으로 애를 쓰며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숨는다고, 잊었노라고 말한다고 그 시절이 없어지는게 아니므로, 나의 도리질로 나와 알고 지내던 그들조차 이름이 없어지고 추억이 없어지는 것이므로, 그 책임은 글로 말하는 내 책임이 크므로, 소설속의 나는 이름없는 그들에게 이름과 당당함을 심어주어야할 책임이 있으므로, 그래서 더 힘을 내서 글을 썼으리라 생각된다.
잊고자 하는 기억은 도리질칠수록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므로…
도망치지 말고, 이제 이렇게 한편의 글로 내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음을 고백하였으니
그시절로부터 자유롭길,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듯 쉽게 부드럽게 시간을 넘나들길 바래본다.
그녀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의 탈출을 꿈꾼다.
서울에서 동사무소에 다니는 큰 오빠가 어서 자기를 데려가기를…
그녀는 외사촌과 함께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저마다의 꿈을 간직하고…
동사무소에서 숙식을 하던 큰 오빠는 그녀와 외사촌을 위해 방을 하나 구한다.
서른일곱개의 방이 모여있는 집, 그 3층에 방을 하나 얻어 셋이서 함께 생활을 한다. 그녀는 그곳을 외딴방으로 칭한다.
외딴방…도시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방, 많은 살림살이가 필요없는 방, 비좁은 방, 고달픈 인생들이 그러나 유일하게 남의 눈치 안보고 편안한 숨을 쉴 수 있었던 방 그래서 외딴방이라고 불렀던건가?
아니면, 내 과거 속에서 결코 이끌어내고 싶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이 있는 시절이라 그렇게 외딴방이라 이름지었던걸까? 그렇게 이름짓고 잊고싶은 기억들을 그곳에 가둬둔채로 한번도 문 열어본 적이 없어서 외딴방이라고 했던가?
외딴방이란 제목에서부터 묘하게 끌렸던 건 나 역시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조각들이 마음 밑 바닥 구석방에 가두어져 있음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꺼내려고만 생각해도 머리는 이미 도리질치고, 스스로 구석방에 못질을 하고 또 하면서 결코 꺼내고 싶지 않은 어느 한 부분들이 있다. 그걸 꺼내보이고 나면 맘이 편할 것 같은데
무서워서, 또다시 한숨 속으로 섞이기 싫어서 두려움에 차마 꺼내질 못한다.
외딴방문을 과감히 열어제낀 소설속의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는 차마 그러지 못하므로…
소설속의 나는 외딴방을 공개하면서 자꾸만 멈칫거리다가 또 한걸음 나아가고, 그러다가 결국 다 털어놓는다, 그리고 자문한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라고…
아무래도 그녀는 여러 번 수정 작업을 했음에도 글이, 말이 사실을 결코 따라갈 수 없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음을 안타까와했던 것 같다. 자꾸만 달아나고 싶다고 속내를 내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녀는 큰 오빠를 따라 직업훈련원에 간다, 그리고 동남전기주식회사에 취직을 한다.
그녀는 이제 돈을 번다,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그녀는 외딴방을 벗어나지 못한다. 큰 오빠가 고생하며 동생들을 돌본 것 처럼 그녀도 이제 동생을 돌봐야하므로…가난은 인연의 끈처럼 피붙이들에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나, 그녀 꿈을 잊지 않는다. 영등포 산업체특별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부기나 주산은 하기 싫다. 깜깜한 밤에 가야하는 학교도 가기가 싫다. 무단 결석을 한다, 그런 그녀를 담임이 가정방문을 온다.
선생님은 그녀에게 부기나 주산이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고, 하지만 학교는 나오라고, 글을 쓰고 싶은게 꿈이라니 수업시간에 그냥 다른책을 읽어도 좋다고 허한다.
그녀, 부기 시간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을 노트에 또박또박 적어나간다.
무지의 어린 나를 지혜의 샘으로 이끌어준 나의 스승들이 순간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들 모두는 내게 최홍이 선생님과 같은 스승님들이다. 편지도 못했다, 찾아뵙지도 못했다,내속을 알아주고 내 꿈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보듬어준 최홍이 선생님 같은 분들이 내게도 있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더듬어 본다. 다들 어디서 뭘하고 계실까…
산업체특별학교에 다니면서 꿈을 키우던 그녀, 오빠의 격려에 힘입어 뒤늦은 입시공부를 하고 대학에 합격한다.
그녀 결국 꿈을 이룬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꿈을 포기하지 않은 그녀, 야간 산업체 학교에 다닌 외딴방 시절 얘기를 가감없이 들려주는 그녀, 이제 그녀의 친구들은 이름도 되찾고 당당한 자신감도 얻었으리라.
외딴방 1층에 살던 희재언니…의상실 남자와 동거를 하면서 남에게 눈총을 받았을지언정
희재언니 그녀에겐 진실로 친절하다. 우울한 그녀에게 비빔국수도 해주고, 오빠가 천안으로 내려가 혼자 남은 그녀에게 말벗도 되어주며, 사나운꿈을 꾸는 잠자리를 보살펴도 준다. 희재언니는 진실한 친구였다.
그런 희재언니가 어느날 그녀에게 문 잠그는 것을 잊고 나왔다면 문을 잠궈줄 것을 부탁한다.
그녀 방문 한번 열어보지 않고 자물통을 잠근다. 시골에 휴가 간다던 그녀는 한참이 흐른뒤에 방안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희재언니의 죽음에 자기도 동조했다는 죄책감에 그녀는 평생 외딴방문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사람을 깊게 사귀지 못한다.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제 속내를 보였으니 자유로와지라고, 희재언니는 너를 원망하지 않음을, 오히려 마지막 가는길을 너에게 부탁했을만큼 희재언니는 너를 좋아했노라고 감히 그녀에게 말하려한다, 나는…
어떠한 삶이든 적어도 내 선한 의지로 살아낸 것이라면 가난이었을망정 결코 창피한 것이 아니다, 다만 살아가면서 조금 불편한 것일뿐.
어린시절 제때에 학비를 못내 담임에게 이름을 불릴때마다,교무실에 불려갈때마다 나는 늘 그 말을 되뇌이곤 했었다- ‘가난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라고.
그렇게 한번 되뇌이고 나면 마음엔 큰 버팀목이 하나 생기는 듯 했다. 그 버팀목에 나는 기대설 수가 있었다.
이제 나는 또 되뇌인다.
남들과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과거, 남들과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온 내 과거, 그건 결코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나는 그때도 열심히 살았고, 그 힘으로 지금도 또한 열심히 잘 살아내고 있노라고.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지만, 그래서 고개숙이고 걷던 날도 있었지만, 나 또한 그런 상황을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기도 했음을…나는 결코 끌려다닌 것이 아니었노라고…
이제 내게도 옛날을 쉽게 오갈 수 있을만큼의 기억의 자유와 손톱만큼의 용기가 생겼노라고…
더불어 끊어졌던 두해의 삶이 멀쩡한 다리로 튼튼하게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하면서 그녀에게 감사한다.
나를 제대로 찾고 당당할 수 있다면
내 가족에게도 지금보다는 더 너그러울 수 있음을 안다.
오늘 저녁엔 전화기를 들어보련다.
늘 일상만을 물어왔는데 용기내어 그때는 정말 엄마가 미웠노라고, 하지만 이제는 그런 감정이 없어졌노라고 말해보련다.
생각이 떠나기 전에 얼른 저녁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