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살 때...
빨간 체크무늬 치마에 빨간 구두, 왼쪽 가슴엔 하얀 손수건을 달고 단발머리 여자아이는 처음 학교라는델 갔었다. 그 구두가 그렇게 이뻐서 아이는 열살이 될때까지 엄마가 사다주는 빨간 구두를 싫어하지 않았다. 질리지도 않았던지 동네 아줌마들이 어떤 신발이 좋으냐고 물어도 구두가 최고라고 아이는 으쓱했다.
열한살이 되니까
아이의 엄마는 노란 운동화를 사다주었다. 새로운 감촉이 좋아서 그 다음부터 아이는 노란 운동화를 제일 좋아하게 되었다.
노란 운동화 신고 폴짝 폴짝 뛰어놀던 아이도 어느새 열네살이 되었고
운동화 색깔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이의 운동화 빛깔만큼이나 아이의 집은 풍족하질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의 발 치수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이듬해 봄이 되어
아이의 엄마가 발 치수를 물어보면
아이는 좋아서 신던 신발을 벗어들고는
바닥이 다 닳아서 보이지도 않는 숫자를 겨우겨우 찾아내곤 했었다.
아이는 달아나는 기억을 잡으려고 그 다음부터 100원짜리 수첩 한 귀퉁이에 발 치수를 적어두곤 했다. 왜냐하면 아이의 발은 1년에 한번씩만 자라야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비오는 날이 싫었다.
아이의 싸구려 운동화는 비오는 날엔 물이 스며들어 양말이 젖기 일쑤였고, 아이는 그것이 창피하고 고민이 되었다.
열 다섯살이 되니까 학교에서 치마입는 날이 생겼다. 운동화만 신고 다니던 아이는 울긋불긋한 단화를 신고 다니는 주변 아이들이 너무 이뻐 보였지만 감히 사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꾹꾹 참았다.
어느새 아이는 열아홉살이 되었다.
아이의 엄마는 그때 처음 단화를 사주었고, 아이는 너무 기뻐서 며칠동안 신바람이 나 있었다. 그리고 단숨에 스무살이 된 아이는 이제 구두를 신게 되었다.
아이는 더 이상 수첩에 신발치수를 적지 않아도 되었고, 노란 운동화도 물론 더이상 신지 않게 되었다.
아이는 이제 자기 손으로 자기의 신발을 고르게 되었다.
아이는 벌써 스물세살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아이의 신발을 골라 줄 사람은 없게 되었다.
어느 봄날, 아이는, 동생에게 노란빛 구두를 사다 주었다. 아이의 동생은 까만색이 좋댔는데 아이는 노란색을 골라 주었다.
아이는 가끔 그 노란빛이 그리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