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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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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여행


BY 하나 2004-08-27

서른넷의 수다를 풀어놓고 나서

 

비구름떼가 집 앞 하늘을 떠날줄 모르던 지난주내내 비가 내렸다. 내가 밟고 지나다니는 발 밑 곳곳에 송송 구멍이 뚫리지 않았나 살펴봐야할 정도로 정말 끝없이 비가 내린 한주였다.

정재를 낳고 바깥출입이 어려웠던 작년 한해는 모임을 보류했었다.  몇 개월 안된 아기를 데리고 장거리 여행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모임은 연기가 되었었다. 매달 2만원씩 내던 회비도 통장에 둥지를 틀 지경에 이르러서야 드뎌 지난 17일 18일 1박 2일 일정으로 모임계획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웬 비가 이렇게 내리는지,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남편은 차마 반대는 못하고, 비와도 가야하느냐며 말끝을 흐린다.

무조건 가야한다고 했다. 환불도 안되고, 비와도 안에서 놀면 상관없다고 강행의사를 비췄다. ㅎㅎ 고작 하룻밤 자고 오는건데도 무슨 짐이 이리도 많은지누가 보면 한 일주일쯤 집을 비우는 사람들 같았을테지하지만, 아직 젖먹이 꼬맹이가 있다보니 기저귀에 분유에, 젖병에, 먹을 때 입으로 먹는거 반, 입 밖으로 흘리는거 반 ㅎㅎ 덕분에 수시로 옷을 갈아입혀야해서 여벌의 옷이랑, 손수건이랑 꼬맹이 몫으로만 한짐이다.  거기에 정찬이 옷 세벌정도나랑 남편 옷 한벌씩작게 추린다고 추렸는데도 가방이 두개ㅎㅎ

전날밤 폭풍 처럼 쏟아지던 빗줄기가 토요일 아침에는 가늘어졌고, 간간히 비가 그치기도 해서 안도의 숨이 나왔다. 전날 직원 집들이 갔다가 다음날의 여정으로 생각보다 일찍 들어온 남편그래도 그때가 새벽 1시 30분이 지나있었으니 여느때에 비하면 잠을 반 정도 밖에 못잔것이다. 어떻게 깨우나 미리 걱정하면서 잠들었는데,웬걸 남편이 일찍 일어나서 밥을 먹는다. 일찍 출발할 수 있겟구나 했는데, 낮잠을 15분정도라도 자야한단다, 습관이 돼서그러다보니 또 시간이 지체되고, 에구, 이젠 정재까지 낮잠을 잔다깰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결국 오후 1시가 지나서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난밤 보다는 훨씬 가늘어진 빗줄기였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정재를 업고, 가방을 들고, 정찬이 손을 잡고남편 차에 올랐다,

!!드디어 출발이다. ㅎㅎ 얼마만의 가족 나들이인지더구나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 수다 떨 생각에 미리부터 가슴이 설레어왔다. 정찬이도 지금은 비오니깐 길을 나서기 싫다고 하지만, 이제 곧 희준이를 만나면 그 생각이 확 바뀔것이다둘이 동갑내기이니깐 얼마나 잘 놀까? 송언이랑 우진이는 또 얼마나 컸을까?  궁금한 마음에 내가 운전대를 잡은 것 마냥

맘속으로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렸다.

초행길이라 헤매지만 않는다면 2시간을 좀 넘겨 도착할 수 있을거였다.

정찬이가 목마르다고 한다. 급한 마음에 정작 아이들 간식거리를 사지 않고 차를 달렸다.

나도 목말랐다. ㅎㅎ 서울을 막 벗어난 만남의 광장으로 들어갔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간단히 음료와 과자를 사고, 정찬이가 좋아하는 핫바도 사고, 오빠도 핫도그 하나 사주고정재가 입맛을 다시길래 핫도그도 좀 주고차 세워놓은 곳으로 오는데 라이트가 켜져있네?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아무리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가끔 이런 증상이 있다고 오빠가 그런다. 오빠는 방전은 아니라고 했다도대체 왜 시동이 걸리지 않는걸까?

지리하게 한참 시간이 흘렀다.

윤은미한테 전화해서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 좀 늦어질것같다고 얘기해놓고, 교선이네는 아무리해도 전화를 안 받는다.

혹시 못가는거 아니냐고 정찬이가 걱정(?)을 한다. ㅎㅎ 만남의 광장 내에 있는 응급차를 불렀다. 기사 아저씨가 방전된거라구결국 응급으로 충전해서 시동을 걸었다.

아마도 아까 켜 놓은 라이트 때문에 방전된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속도감 있게 차를 몰았다. 집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비가 내렸지만, 양평쪽으로 들어오니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양수대교를 지나고, 작은 읍을 지나고,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강물을 신기한듯 바라보면서 차를 달렸다. 늘어난 강수량으로 팔당댐 수문이 두개정도 열려있어 물이 콸콸콸 용솟음 쳤다. 오랜만에 보는 녹색과 연두색의 산과 나무들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정재도 신이 나는지 울지도 않고 잘 놀았다.

길을 헤매긴 했지만, 저녁 5시경 우리가 도착한 통나무집 알프스 펜션은 정말 아름다웠다.

주인이 신경을 제법 썼음직한 정원엔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나무계단과 나무의자가 정말 운치있었다. 연애시절 이런곳에 왔더라면 절로 사랑이 샘솟을 만큼

햇빛 쨍쨍 비쳐서 땀 흘리는 것 보다, 초록 숲에서 불어오는 적당한 바람에 풀내음 맡을 수 있는 이런 날씨가 더 좋았다. 밖에서 고기 구워먹을 수 있겠다 싶었지.

은미네가 먼저 도착해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통나무집천정이 우리집의 두배는 높은 그런집그래서 시원하고 탁트인 집이었다. 거실 한가운데에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L자로 2층 문까지 이어져있었고, 벽마다 가족들 사진이며 그림, 꽃, 벽걸이 화분들이  걸려있었다.  거실 한가운데에 2층방이 있는 그런 모양새였다. 그 둥근 기둥을 가운데두고 원통으로 통로가 나 있어서 아이들은 줄곧 운동장을 뛰듯이 빙글빙글 돌면서 놀았다. 바닥도 마루바닥이라 아이들이 뛰어도 폭신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리고 통로가장자리로 욕실과, 침대방, 온돌방이 하나씩 있고, 제법 너른 주방과, 큰 거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녀들이 모두 외국에서 살고 있는 주인내외는 이렇게 펜션 사업을 하면서 외로움도 잊고,세상 얘기도 전해듣는 것 처럼 보였다.일반 지대보다 조금 높게 자리하고 있어서 창문을 열면 앞산이 이만큼 다가오고,겨울에 보는 설경 또한 기대가 되는 그런 집이었다.

오랜만에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려와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놀던 생각이 절로 났다.

운좋게도 정찬이랑 희준이는 주방으로 멋모르고 뛰어들어온 작은 청개구리 한마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우리때야 자주 보던 거지만, 요즘 아이들은 개구리 보기도 사실 쉽지가 않은터라 녀석들 무지 신기해했다. ㅎㅎ

장을 봐 오는 교선이네가 제일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배고픈 아이들이 아우성을 쳤다.

하긴 우리도 아침겸 점심을 먹은터라 정말 배가고팠다.

오자마자 그 원망을 다 들으며 교선이와 승규씨는 급하게 장 봐온 물건들을 냉장고에 정리했다. 금새 양파와 감자, 호박을 깍뚝 썰고, 상추와 온갖 유기농 야채들이 냉수에 샤워하고버섯과 고구마, 감자도 보기좋게 접시에 담기고

밖에서는 성구씨가 숯불을 준비해 고기 구울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먼저 된장찌개랑 밥을 먹이고,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았다.

술잔이 오가기도 전에 빨갛게 달구어진 숯불위 석쇠에선 삼겹살이 기름기를 쪽쪽 뽑아내고 있었다푸르름 속에서 먹는 삼겹살은 정말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처음엔 정재를 업고서 밥을 먹었는데, 힘들어서 자기들끼리 놀라고 아이들 틈에 정재를 내려뒀는데

이내 엄마를 찾으면서 우는 바람에 그 좋은 수다방에 제대로 참석을 못한게 아쉬울 뿐이다.

정찬아빠는 직접 고추장 양념장까지 만들었다. 청양고추를 다져넣고, 고추장이랑 쌈장을 섞어서 만든 양념장은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웠지만, 그 덕에 고기맛을 돋구는데는 최고였다. 웃음소리가 집 뒤로 크게 울려퍼지고.개구리 울음소리도 어둠에 묻혀질 무렵에서야 집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찬이랑 희준이는 동갑내기라 둘이 잘 놀았다. 말도 통할 뿐더러 말 하마디 들으면 서로 낄낄 거리고 웃고.잠옷으로 갈아입은 우진이는 제법 고고하게 앉아 책을 읽는다. 송언이는 대형 선풍기 앞에서 손으로 머릿결을 쓸어올리며 진정한 공주의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정재한테 다가와서는 까꿍을 연발하고, 누가 애기 봐줄거냐니깐 우진이랑 송언이가 서로 자기가 보겠노라고 손을 들었다.ㅎㅎ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울려 놀때가 가장 밝아보인다.

그 해맑은 웃음을 보면 누군들 같이 웃지 않을 수가 있을까?

맘껏 뛰어다니고 소리질러도 누가 뭐라할 사람 없는 이 새로운 공간이 아이들은 무척이나 맘에 들었을 것이다.

정재는 자꾸만 2층으로 통하는 나무계단을 올라갔다. 하지만,그럴 때마다 송언이랑 우진이가 와서 아기가 계단에 올라갔다고 알려줘서 금새 달려갈 수가 있었다.

녀석이 겁도없이 계단을 세개나 기어올라갔다. 어찌 내려올려구

집이라면 벌써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인데, 아이들도 오랜만에 보니 할말이 많았는지

밤 늦도록 우리 곁에 앉아서 소근소근 댄다.

거실에 이불을 펴주니 그제서야 희준이랑 정찬이는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갓난 아기 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침대방을 차지했다. ㅎㅎ 정찬이가 아침에 일어나니깐 자기는 침대에서 못잤다고 투덜댄다. 그리고 늦게 잤는데도 일찍 일어났다고 자랑을 한다.

높은 거실이라 찬공기가 어려있어서인지 희준이랑 정찬이랑 둘다 기침을 좀 하긴했지만

그래도 녀석들 아침밥 먹기가 무섭게 욕실에 들어가 물장난을 한다. 벌써 세번째의 물놀이다. 하긴 집에는 이런 욕조가 없으니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우진이도 좀 컸더라면 같이 동참을 했을텐데욕조에서 거품이 나온다고 좋아라 소리지른다.

지하수라 정말 차갑고 손 찌릿찌릿할 만큼 서늘한 물기운이곳에 살면 계절이 어찌 가는지 미처 눈치채지도 못할 것만 같았다.

저녁 먹은지가 금방인데 승규씨가 그새 또 황금수박이랑 포도를 가지고왔다.

정재가 어찌나 수박을 잘 먹던지, 수박 좀 자주 사주라고 한마디씩들 했다.

수박이랑 포도, 오징어채를 안주삼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다들 부모들인지라 당연히 얘기는 아이들 얘기였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부쩍 자랐으니 금새 또 마흔살 되어 그때는 이 녀석들이 여기 같이 안 놀러온다고 빼겠지? 이런 얘기도 나누고

정재 잠투정이 어찌나 심한지 겨우겨우 재워놓고 나와서 술 한잔 했는데 그새 또 앵 하고 울어버린다.  들어가서 옆에누웠더니 쌔근쌔근 잠을 청한다. 그러다 나도모르게 잠이 들었다.

2층에서 주인이 왔다갔다하는 소리에 잠이깨버렸다.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쳤나보다.

밤이슬에 밖에 놓아둔 신발이 모두 젖어버렸고, 차들도 물안개 속에 잠겨버렸지만 곧 이슬은 마를터였다.

어제 교선이가 닭계장을 끓인다고 생닭을 세마리나 사왔는데, 아직까지 자는걸 보면 닭계장 먹긴 틀린것같고그냥 백숙으로 먹어야할 것 같아 닭을 삶았다. 그 사이 옥수수 껍질을 모두 벗겨서 옥수수도 삶을 준비를 했다.

..아침이 너무거하군주인 아줌마는 아침으로 토스트 제공해준다며 잊지말고 먹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우리는 근사한 아침을 먹었다. 늦게 일어난 오빠는 라면을 먹었지만은미가 남은 김치며 밥을 모두 음식물쓰레기통에 넣는 바람에 오빠는 정작 밥도 못먹었다. 우진이가 그렇게 매운 라면을 잘 먹는줄 미처 몰랐다. 어제부터 라면 타령했는데

끓여주지 않다가 오빠가 먹을 때 같이 나눠줬다. 이내 송언이랑 희준이, 정찬이가 다들 밥상으로 모여든다. 숟가락 든 정재마저도ㅎㅎㅎ

결국 라면을 또 끓여야했다.

역시 라면도 여럿이 먹어야 제맛이 나나보다.

12시쯤 팬션을 빠져나와 40분쯤 꼬불꼬불 울퉁불통한 시골길을 달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암면 진중리에 위치한 거미 연구 목적의 생태수목원 '아라크노피아(arachnopia.거미)'를 방문했다. 1인당 입장료 5천원, 아이들 4천원씩 내고 입장을 했는데 인상적인 곳이었다.

층층마다 식물공원, 조각공원, 놀이공원,희귀식물관이 있었고, 올라갈 때는 왼쪽으로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이 보였고, 내려오는 길에는 지압길이 있어서 다들 맨발로 걸어내려왔다.정재를 업고 올라갔다가 내려올때는 신발을 신겨서 같이 걸어왔는데 녀석이 얼마나 신나게 걷는지 보면서도 신이났다. 중간쯤 내려와서 나무계단에 앉아 가족사진을 찍었다.

며칠 내린 비로 곳곳에 빗물이 고여있었는데, 신발에 물이 들어오니깐 처음에 가만히 서있던 정재는 이내 첨벙첨벙 발로 물장구를 쳤다. 집에서는 아빠한테 잘 가지도 않는 녀석이 밖에 나와서는 아빠한테 착 붙어가지고 다닌다. ㅎㅎ 정찬이랑 희준이는 웃통을 벗어 제치고 산의 푸르른 내음을 맘껏 들이켰다. 우진이는 어른들이 하는건 다할려고 기를썼다.

송언이는 여전히 아빠한테 안아달라고 조르고….그러더니 놀이터에 와서는 다들 거기 모여서 놀았다. 미끄럼 타고, 시소타고, 그네타고…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즐거운 비명은 여기 수목원에 그대로 남아있을테지..

이 수목원은 동국대 생물학과 김주필 교수가 거미 생태연구를 목적으로 개관했다고 한다. 1층에 있는 거미관은 온갖 종류의 거미들이 진열돼 있었다.

서랍을 열어보니 서랍마다에 아주 작은 유리병이 있고, 그 안에 조그마한 거미들이 종류별로 가득 들어있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중간에서 본 나비 표본도 정말 입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종류가 많고 예뻤는데

아이들이 정말 신기해했다.

정찬이 말마따나 오늘은 정말 신나는 하루였다.

아이 어른들 모두에게

다음엔 바닷가로 좀 움직여보자는 약속을 벌써 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만큼 즐거운

모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저녁은 차로 한시간 가량 더 달려서

구리 인근의 물이 맑은 집에서 한정식을 먹었다.그때가 오후 5시였다.

다들 피곤함이 쌓일시간이었지만, 그 덕에 더 맛난 저녁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쁜 정원이 내려다보이고 한켠에 사슴 농장이 있고, 군데 군데 탁자와 나무의자가 놓여있는 그런 한정식 집이었다.

냉수 한 컵이라도 자연속에 앉아 마신다면 그건 더 이상 냉수가 아닐터

초록 자연을 맘껏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들이마실 수 있었던 그런 하루였다.

당분간은 입에서 풀내음이 날지라도

즐거운 맘으로 또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운전하느라 고생한 우리 남편과 성구씨, 승규씨…

하지만, 가족들이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알기에 그 피로를 금새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아이들에게 이틀동안의 커다란 기억을 남겨주고파 글월로 몇자 적었다.

 

2004년  7월  19일  월요일

사랑하는 친구 교선이와 은미와 그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인천에 있는 벗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