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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한계점


BY 蓮堂 2008-11-10

나의 한계점

글이 좋아서, 무언가를 긁적거리며 내안의 나를 끄집어내는 게 가슴 뿌듯할 것 같아서 괴발개발 글이랍시고 써댔다. 꽉 막힌 일상을 뚫어 줄 돌파구 역할 하기에 충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직 식지 않은 열정을 확인하고, 들여다보고 싶은 욕심이 더 컸기 때문이다.

신문사에 투고를 해서 나를 알릴 기회도 만들어 보았고 유명 출판사는 아니더라도 문학계에 발 들여놓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서 ‘신인작가상’이라는 걸 손에 거머쥐어 보았지만 속내는 항상 일등자리 놓친 이등일 뿐이라는 자괴감에 두 번 다시 상패를 열어 보지 않았다. 내 욕심에 미친 곳이 아닌 탓이기도 했지만 결코 최선을 다한 역작이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은 그런 글이 순순히 당선 된 것 자체를 의심 할 만큼 그때까지 내 글에 대해서는 혹독한 칼을 그어댔던 나였다.

내 수준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덜컥 원고를 보내놓고는 후회와 기대를 교차시켰던 모순으로 발표당일까지 전전긍긍해야했다. 문단데뷔의 매력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당찬 야심은 졸작의 부끄러움도 잊어버린 채 당선의 기쁨보다는 탈락의 고배를 더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우기도 전에 단맛부터 봐 버린 오류를 범했다.

‘작가’라는 타이틀은 볼품없는 자만심만 키워 놓았고 서서히 나를 제자리에 주저앉히는 장애로 돌변했다. ‘타이틀’이 결코 배경이나 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자리에 안주하려는 게으름은 단맛에 입맛을 돋운 자만심이 탄력을 받아 응모한 출판사 - 벽 높기로 소문난 -로부터 세 번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신 뒤에서야 게으름이 아닌 ‘한계’라는 막다른 벽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단맛부터 본 뒤 마신 쓴맛은 쓴 게 아니라 혓바닥을 녹인 독주(毒酒)보다 강한 충격이었다. 나의 자만심이 여지없이 밟히는 순간 난 심한 매너리즘에 빠져야 했고 그 매너리즘은 나의 한계를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이유를 터득하면서 바닥부터 다시 기어오르는 연습에 들어갔다.

나의 글을 탈락 시켰던 출판사의 책을 구해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토씨하나 안 놓치고 읽어 보았다. 책장을 넘길수록 내가 미칠 수 없는 높은 벽을 실감했다. 우선 그 작가들의 이력이 나와는 비교 할 수없이 화려하고 거창해서 지레 주눅이 들었고 그런 명성에 걸 맞는 작품 수준에 또 한 번 자만의 각이 구겨져 버렸다. 떼어 낼 군살 없이 매끈한 미사여구와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엮어낸 아귀 맞는 날렵한 문구들은 나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수작들이었다. 짧은 내 식견으로도 눈에 띄게 쳐지는 내 글을 그 벽 높은 출판사에 응모를 했다는 것은 오르지 못할 나무를 넘겨다 본 객기에 불과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라는 시구가 있어 가능성을 점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나의 초라한 이력을 핑계 삼아야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국문학을 전공 했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한 때 불거진 학력위조 사건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유명대학의 학과를 찍어 댔다면 나의 글이 선입견에 의한 대접을 조금이라도 더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글을 더 욕되게 하는 것 같아서 ‘아뇨 전 고졸입니다’ 라는 말로 모든 것을 압축해서 말해 버렸다. 압축 시킨 속내엔 고졸이지만 대졸이냐고 물을 정도의 글을 썼다면 대단한 것 아니냐 하는 은근한 오만이 깔려 있었고 한편으론 속이고 대접 받느니 정직하게 말해서 알맹이까지 드러냄으로서 나에 대한 한계를 넌지시 비추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력이란 부지런함과 정직함 그리고 잠재된 감정을 최대한 살려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학력을 미끼로 많은 것을 혜택 받고 면죄부를 얻어 내려는 어리석음이 글을 쓰는 곳까지는 발걸음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은 혹시라도 고학력의 힘과 화려한 이력, 경력이 곧 실력이라는 등식으로 이어질까봐 노파심에서 가져본 생각이다. 나의 편협 된 생각이 열등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맘이 든다.

내가 글 쓰는 수업을 받은 것은 고작 학창시절 일주일에 한 시간씩 주어진 특별활동 시간이 전부였다. 수업이라고 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강사로부터 체계적으로 받은 수업이 아니고 문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과담당 선생님이 한 시간 동안 내준 과제에 맞춰서 길든 짧든 글을 만들어서 제출하면 그만이었다. 내 끼를 살려서 앞날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기엔 너무 조잡하고 한심스러운 수업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특기를 살려 그에 맞는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던가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전교생이 보는 연단에 서서 내 원고를 읽었을 때의 그 감동은 장차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발판쯤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발판은 삐걱거리고 힘없는 디딤돌에 불과했기에 옆길을 틔워서라도 내 앞길은 내가 만들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그쯤에서 성장을 멈춤으로서 ‘한계’라는 마지노선을 그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옥석을 가려내어 갈고 닦아준 선생님을 만났다면 지금의 내 글이 조금 더 모양새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수 십 년의 세월이 밀려간 지금까지도 부셔지지 않는 미련덩어리로 남아있다. 그러나 나의 한계를 어느 한곳을 겨냥한 ‘탓’으로 돌리기 전에 내 능력이 닿을 수 있는 곳이 과연 어디쯤일까를 가늠하며 한 번 더 나를 더 돌아 볼 기회를 만드는 것이 글을 쓰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