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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즐겁다


BY 蓮堂 2008-06-26

미쳐야 즐겁다.

요즘 나는 미쳐 있다. 아니 즐기고 있다. 미침으로서 즐겁고 즐거움을 만끽하려니 완벽하게 미쳐 있어야 했다.

몇 달 동안 글 쓰는 일을 거의 접다시피 하고 있다. 전에 없이 자판 두들기는 횟수가 줄어든 대신에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 것이다. 상식과 정보를 얻으려니까 두 가지 일이 나에겐 버겁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버거운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맘이 쏠리다보니 글 쓰는 맛과 재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한 가지 일을 벌려 놓으면 끝장을 보는 성격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탓에 옆길로 새는 줄 알면서도 이미 틔어진 물줄기는 쉽게 수습이 되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글이 줄줄 이어져 나오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핑계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데 대한 미안함일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미안할 것도 핑계 댈 것도 없는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일이다. 글 안 쓴다고 누가 나무라지도 않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단지 내가 나한테 미안하고 면목 없을 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글 쓰는데 몰입 한 삶은 즐거웠고 보람도 있었다. 그 때는 미쳐 있다는 표현보다는 몰입해 있다고 해야 맞는 것 같았다. 요즘같이 혼을 빼앗기지는 않았으니 몰입의 사전적 의미로 보더라도 빠진다는 뜻이지 미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취미는 다양했지만 그중에서도 독서와 음악 감상이 고정되어 있는 취미였다. 누간가가 묻기라도 한다면 쉽게 대답할 취미가 있음이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서점을 들어서면 특유의 종이냄새가 좋아 일부러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냄새만 맡다가 온 적도 있었고 음반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다보니 손에는 한 두 장의 시디가 꼭 들려 있어야 직성이 풀렸었다. 이 역시 미쳐 있었던 게 아니고 빠져 있었던 것이다. 혼은 살려둔 채로 즐기기만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감성은 고여 있는 게 아니고 늘 유동적인 것이어서 변하기 마련인 모양이다. 어느 날 부터인가 책과 음악이 심드렁하게 뒤로 밀리는 계기가 있었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 아주 생소한 - 다육(多肉)이란 식물이 최근의 내 생활패턴을 홀랑 뒤집어 버렸다. 화초 기르는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온 일인지라 취미 가 아니고 아주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상이다. 넓지 않은 베란다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각종 화초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희귀하거나 값이 나가는 명품은 없지만 단지 내 사랑과 관심을 먹이삼아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으로도 난 그들을 명품으로 대접하고 있다. 싸거나 흔하다고 홀대 한 적이 없다. 그들이 어떤 종류든 나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 동안은 최대한의 사랑을 주었고 명이 다해 내 품을 떠날 때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맘을 아낌없이 보여 주기도 했다. 집을 며칠 비울일이 있으면 그들이 걱정되어 선뜻 나서질 못할 만큼 난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 그들이 있음으로 난 즐겁고 행복하다.

배가 비어도 포만감을 주었고 느슨한 일상을 당겨주기도 했다. 골똘히 생각할 일이 있으면 그들과 마주한 채 수없는 독백을 쏟아 놓으면 나를 거부하지도 밀어내지도 않은 채 묵묵히 들어주는 한결같은 인내심도 보여 주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동안 내 머릿속은 거의 백지상태가 되어 모든 걸 초월하고 잊어버린다. 내가 사랑 한 만큼 그들도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의심한 적도 없다.

나의 별스러운 화초 사랑은 몰염치로 변질되어 눈에 뜨이는 대로 뺏다시피 얻는데도 이력이 났기에 나를 아는 사람은 자진 납부하는 아량을 보이기도 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키워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일단 얻고 보자는 심사는 거의 병적이다. 식구가 늘면서 베란다 공간을 둘로 나누는 기발한 작업도 구상중이다.

이 다육이도 내 취향을 익히 아는 지인이 권하는 바람에 관심을 두었는데 처음에는 선인장인줄 알고 대수롭잖게 보아 넘겼지만 지인이 주는 잎 몇 개를 가지고 키워보니 그게 아니었다.

생장점에서 출산된 새끼들을 보는 재미는 재미의 경지를 넘어선 신비였다. 손톱보다도 더 작은 잎에서 실낱같은 뿌리가 기어 나오면서 새끼가 달린다. 종류에 따라서 여러 개가 달리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인색하게도 한 개씩만 달린다. 모체를 뚫고나온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어미는 새끼를 품고 있다. 억지로 떼어내면 어미살점이 떨어지든가 아니면 분리된 새끼들이 옳게 자라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새끼들이 커감에 따라 어미는 조금씩 진을 빼앗기다가 새끼들이 홀로 자랄 준비가 되었을 무렵엔 물기가 소진된 채로 바짝 말라 있다가 스스로 새끼들에게서 떨어져 나온다. 이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 오는 이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새끼를 잉태하고 키워내는 과정은 사람이나 다를 바 없다.

핀셋으로 그들을 하나하나 심으며 정성을 들이는 이유는 혹시라도 새끼를 떨어뜨릴까봐 안간힘을 쏟는 듯한 어미 잎의 눈물겨운 몸부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비슷비슷해서 같은 종류인줄 알고 한 곳으로 몰아 심었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얼굴 모습을 달리하듯 그들도 자라면서 자신만의 특유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만 해도 백 여 가지나 되는데 다른 화초들을 합치면 이 백 여개가 된다. 이들에게 각자 집을 주려니 화분 값도 만만찮다.

궁리 끝에 오래되어 사용하지 않는 자기나 사기그릇, 그리고 커피 잔 밑둥치에 구멍을 뚫어서 화분대용으로 썼더니 나름대로 멋이 있었다.

그릇 안에 물걸레를 채워서 진동을 최대한 줄인 뒤 못을 박아 넣으면 깨지지 않고 쉽게 구멍을 내는 방법까지도 터득하는 기특함도 배웠다. 머리란 급하면 돌아가기 마련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제일먼저 배란다로 쫓아나간다.

밤새 자라면 얼마나 자랐겠냐마만 엊저녁까지도 안보이던 뿌리가 보일락 말락 붙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그 감동은 하루 종일 이어진다.

나의 광적인 사랑은 남편의 은근한 시샘에 기름을 들이 붓고도 남는다.

“이 사람아, 나를 그렇게 사랑해서 들여다보면 좀 좋아?”

그러면서도 배양토를 사다 나르고 이름표 붙여 주는 관심을 보인다.

미친다는 것, 그것은 비단 한곳으로의 쏠림만을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한곳으로 쏠리되 생활패턴이 균형을 잃지 않게끔 맞은편도 지그시 눌러주는 여유를 부릴 줄 알아야 옳게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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