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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등골 빼겠네


BY 蓮堂 2007-04-11

 




오라버님의 회갑을 핑계로, 즉 아들 회갑은 피해야 좋다고 하는, 믿거나 말거나 한 떠돌이 입방아에 떠밀려서 열흘 전에 내 집으로 오신 어머님의 일과는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꼬치에 끼워 놓은 곶감처럼 일정하다. 강보에 쌓인 젖먹이 같이 먹고 자고, 자고 먹고 만을 반복 할 뿐 크게 반길만한 프로그램이 없는 한 어긋나지 않는 하루 일과다. 흙 밟을 일이 없는 아파트 생활에서 어머님의 움직임은 단순하고도 짧을 수밖에 없다. 며칠 전에는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라고 했더니 백여 개가 되는 화분에 물을 주자면 시간이 조금 걸리듯 한데도 바가지로 두어 번 휙휙 뿌리더니 다 줬다고 일 한 티를 내셔서 혼자 웃곤 했다.

하루의 동선길이를 삼십 센티 자로 재도 잴 수 있는 어머님은 남편의 출근시간에 맞춰서 아침 드시고 나면 유일한 일과가 리모콘 손에 들고 소파에 앉아서 동물의 생태에 초점을 맞춘 프로에 TV채널을 고정시켜놓고 꾸벅꾸벅 졸다가 그대로 소파에 몸을 묻는 일이다. 들고 있던 리모콘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면 비로소 난 TV를 끄는데 희한 하게도 곧바로 눈을 뜨시고는 보고 있는데 끈다고 섭섭해 하신다. 당신은 잠이 들어도 TV는 깨어 있어야 했다. 자면서도 안 잤다고 하는 이것은 노인들의 공통분모라고 한다.

거실 TV는 어머님의 독점으로 남편과 나는 방으로 쫓겨 들어가야 했지만 엄마 혼자 거실에 계시게 하는 게 맘에 걸려서 맘에도 없는 프로 보면서 같이 즐거워 해 주고 관심을 보이면 좋아 하셨다. 몸과 몸을 부비서 열을 내어 젊은이(?)들의 기를 옮겨주면 좋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자꾸 몸을 밀착시켜 보았고 얼굴도 만져주고 머리카락도 쓸어 넘겨드렸다. 노인들이 고독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체온을 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배우자 외에는 손 하나 따뜻하게 잡아주는 이 없는 외톨이 노인들에겐 식어가는 체온을 데워 줄 이가 배를 채워줄 음식보다도 더 절실 할 수도 있다.

내레이터의 설명만으론 부족해서 아래로 자막이 깔리는데 어머님이 알아보실 리가 없지만 남미의 구렁이 아나콘다를 설명하실 땐 희미하게 졸던 눈빛이 아니고 광채까지 띤 어린아이 같아서 맘이 짠했다. 이해를 요하는 드라마는 머리가 아파서 보기 싫다고 하셨고 노래는 시끄러워서 듣기 싫다고 하셨다. 그저 머리 비워서 부담 없이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동물의 움직임만을 보고자 하시는 엄마의 예전 취향은 노래를 즐겨 부르셨고 외국영화를 혼자서 늦도록 보시는 것이었다. 삼십년 전의 전설에 너무 무게를 싣고 있는 게 아닌가 싶지만 세월을 거쳐 가면서 바뀔 수 있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어진다. 불과 4~5년 전의 내 취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 못하면서도 난 불변하다고 고집하는 이유 역시 알지만 모른 척 하고 싶어지는 서글픔은 나에게만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입맛이 수더분하지 않아서 끼니때나 간식시간이 되면 늘 고민이 따른다. 아버님은 물론이고 어머님의 입맛 까다로운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과 맞물린 걱정으로 올케 고생시킬까봐 맘이 편치 않았다.

먹을거리를 앞에다가 놓고 잡숫기를 강요하지만 그럴 때마다 고개를 젓는 어머님이 야속해서 일부러 언성을 높이고 나면 일년 전부터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던 울컥거림이 눈치 없이 부글부글 기어오른다.

두어 달을 내 집에 계시면서 내속을 무던히도 태웠던 아버님 생각에 다시금 뻣뻣해 오는 목덜미를 손으로 누르곤 눈가를 훔쳐야 했다. 

음식만 드리면 인상을 쓰면서 자꾸만 입이 아프다고 하셨지만 핑계려니 귓등으로 듣고 아버님만 나무랐다. 드시기 싫으면 드시지 말라고 하면서 곧바로 상을 들고 나와선 입을 빼물었다. 아버님의 투정이 너무 심하셔서 혹시나 하는 맘에 입안을 들여다 본 나는 기겁을 했다. 성한구석 없이 허옇게 헐어버린 입안을 드문드문 박힌 이가 상처를 건드려서 피가 맺혀 있었다. 주저앉아서 그대로 통곡을 했다. 얼마나 아프고 힘드셨을까. 생각이 이 대목에만 머물면 시도 때도 없이 목줄이 아파온다.

며칠 후면 아버님 1주기다.

친구들과 외국나들이를 끝내고 대구공항에 도착하던 날 여행 짐도 풀지 못하고 곧바로 중환자실의 아버님을 뵈어야 했다. 그리고 일주일후 진달래 개나리가 봄 산을 물들이고 길가에 즐비한 벚꽃들의 화려한 운무가 눈앞을 어지럽히던 날 풀리지 않은 화한과 슬픔의 뭉텅이 그대로 한구석에 밀어 둔 채로 아주 먼 곳으로 보내드려야 했다. 일년이 지나도록 닳지 않고 풀려지지 않은 그 응어리는 자꾸만 쇠락해가는 어머님을 볼 때마다 더 보태져서 억지로 봉합해 놓은 슬픔의 실밥을 뜯어 놓았다.

어머님의 유일한 간식은 배추전이다. 노란 배춧잎에다가 얇게 밀가루를 묻혀서 노릇노릇하게 지지고 깨소금과 참기름 듬뿍 넣은 간장에다가 찍어 드셔서 그마나도 내가 한숨 돌릴 수 있는 일이었다.

아침식사 땐 밥 한공기와 미역국 한 그릇을 다 드시곤 반찬도 이것저것 집어 드시기에 기분 좋은 한마디를 했다.

“엄마, 그렇게 많이 드시면 사위 등골 빼는데.........”

흘깃 쳐다보시는 눈빛은 이미 내 맘을 다 읽으신 듯 웃음을 담고 계셨다.

자상하신 아버님과는 달리 희로애락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아서 늘 그 속이 궁금했지만 우스개 소리를 곧잘 하시는 재주를 가지신건 아무래도 신기한일이다.

아버님이 병환 중에 계실 때도 어머님은 곧잘 웃기셔서 그나마도 위안이 된 적이 있었다. 어찌 보면 어른으로서 자발없어 보이지만 어머님 천성이 낙천적이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겨울을 거치고 봄빛이 늘어지면서부터 앓아오던 봄앓이는 뒷산 진달래꽃이 하얗게 바래지고 가로수 벚꽃이 누렇게 말라 떨어질 때까지, 아버님을 그리는 목줄의 당김이 느슨해질 때까지, 그리고 어머님의 작은 몸뚱이가 깃털같이 가벼워서 포르르 날라 갈 때까지는 아무래도 치유 되지 않을 계절병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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