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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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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BY 蓮堂 2006-09-11



남하고 잘 다투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급한 맘에 앞뒤 안 잰 불찰인지 몰라도 돌아서면 금방 후회 할 일을 해 놓고 몇 시간을 끙끙 앓아야 했다.

벼르고 벼르던 거실장을 남편의 큰 수술을 앞둔 싯점에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무리를 해서 들여 놓았다. (할 건 하고 살아야 된다는 남편의 주장이다.)

우리나이엔 요란스럽고 화려한 것 보다는 은은하고 무게가 있는 옅은 갈색계통이 좋을 듯해서 남편과 의견일치를 보았는데 휴일이라서 당장 유리를 해 줄 수가 없다고 했다.

한꺼번에 들여 놓으면 개운 하겠지만 사정이 그러하니 다음날로 미루어 주었다.

카드 결제를 하지 않고 조금 깎아주는 조건을 달고 현금으로 샀다.

그러나 다음날 일찍 해 주마던 유리는 약속시간을 한 시간 이상을 오버 하고도 연락이 없다. 외출 준비를 하다가 답답해서 전화를 하니 유리 집에 유리가 없다는 이상한 이유로 세 시간 이상을 기다려 달라고 해서 기다렸지만 온다던 유리는 해가 꼴딱 넘어 가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하루 스케줄 펑크 내 가면서 기다리던 난 서서히 화가 나서 전화를 했더니 미안하다고 엎어지는 듯 했다. 물론 듣기 좋은 소리 할 턱이 없다.

더군다나 홧김에 현금 영수증까지 끊어 줄 것을 요구하니 주인은 난색을 표했다. 깎아준 댓가에 대해 너무 한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뒤늦게 유리를 가지고 온 스무 살 남짓한 종업원이 나에게 말 벼락 맞고 돌아 간 뒤에 목에 걸린 가시가 점점 폐를 뚫듯이 마음은 아리고 엉망이었다.

조금만 참을 걸 하는 후회, 그러나 할말 했다는 자기 위로, 그것도 아니면 영업 하는 사람의 자세가 옳지 않으니 사업을 위해서라도 한마디 쯤 따끔한 충고도 들어야 약이 된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나를 달래었지만 내내 무겁게 캥겼다.

이렇게 남하고 싫은 소리 하고 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무슨 고약한 일인가 싶다.

누구 잘못이든 좋은 말로 화 안 내고 듣기 좋은 말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련만 나이 값도 못하고 좁쌀 같은 속을 드러내고 말았으니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사람들에게 못할 짓 했다는 자괴감에 용기를 내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두 시간 이상을 끙끙거려 보았지만 마음은 안정이 되지 않고 오히려 공중을 풀풀 날라 다니는 듯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호음이 가는 중에도 가슴은 죄 지은 사람같이 요란하게 쿵덕거리고 경직 되었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주인은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목소리를 깔고 마지못해 답을 하는 듯 하는 걸 보니 아마 불쾌감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례한 소리나 욕설은 하지 않고 음성만 높였을 뿐인데도 기분은 언잖았나 보다.

솔직하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될 걸 급한 성질을 못 참고 불쾌하게 해 드린 것 같아 맘이 불편해 견딜 수가 없어서 이렇게 전화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루 스케줄 어긋났다는 소리는 해야 했다. 그래야만 내 입장에 체면이 설 것 같았고 화를 낸 명분에 힘을 실어 주는 것 같았다. 먼저 사과 하는 마당에 나를 위해서 바늘구멍같이 틔워놓은 변명일수도 있는 자기 합리화가 조금은 못마땅하긴 하다.

의외의 전화에 주인의 놀란 음성은 곧바로 감지되었고 이어서 도리어 죄송하다는 말미에 고맙다는 소리를 연신 해댔다. 더군다나 현금 영수증도 끊지 말라고 했으니 아마 보지 않아도 고개를 숱하게 주억거렸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손님과 약속어긴 실수로 인해서 코너로 몰려야 했던 젊은 주인의 마른 얼굴이 떠올라서 안쓰러운 마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물건 사러 가겠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은 깃털같이 가벼워졌다. 나뿐만 아니라 그 젊은 주인의 맘도 내 맘 같으리라.

이렇게 한 마디만 하면 두 사람의 맘이 가벼워 질 것을 무어 어렵다고 몇 시간을 그리 앓아야 했는지 슬며시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과를 하고 미안해하는 것이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라는 쓸데없는 오기 때문에 쉽게 자기의 티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인색을 떤다. 괜히 밀리고 지는  것 같은 그릇된 생각도 한몫 거든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솔직한 자기표현이 오히려 마음의 짐을 덜어 내는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련만 쉬운 일을 어렵게 몰고 가기에 갈등이 생기고 틈이 벌어진다.

잘못을 인정하면 인격이 깎인다는 그릇된 생각의 시발점은 어디인지는 몰라도 인정이 곧 종착역임을 잊고 산다.

용서하는 자만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했던가. 사과 하는 사람만이 사과를 받을 수 있다는 말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용서와 사과는 용기 있고 용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주저하고 미루어 두면 실행하긴 점점 어려워진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생기고 핑계거리를 만들려면 또 다른 핑계를 댈 수밖에 없다.

간단한 사과가 힘들다면 더 큰 실수에 대한 인정은 더더욱 하기 어렵다.

호미로 막을 일에 가래까지 들먹여도 해결하기 힘든 경우를 종종 본다. 뱉은 말은 사흘이지만 들은 말은 삼년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뱉은 말도 나에겐 삼년처럼 길게 꼬리를 드리운다. 그만큼 쉽게 털어내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성급하게 뱉은 말에 전전긍긍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는 헛 사과 한마디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 핵심의 키는 돌리되 죽어라고 입을 다무는 나의 조개 같은 성깔은 나도 어쩌지 못하는 덫이다.

사과 받을 일도 속에 담고 김을 올리는 한이 있더라도 밖으로 뿜어내진 못한다.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려 주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사과 받을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힘들게 사과 해 오면 어떻게 받아 주어야 상대방이 덜 미안하고 덜 민망할까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도 부담이라면 부담이다.

너무 가벼워도 무시하는 것 같고 너무 무거우면 오히려 덧날수도 있는 민감한 일이다. 그래도 사과를 하면 기분 나쁘지 않은 건 사실이다.

두 어깨에 무거움 짐을 얹어 놓았던들 이렇게 무겁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거운 짐 내려놓았을 때 이렇게까지 가벼울 줄도 몰랐다.

아마 실수를 인정하고 사는 것이 몸에 배지 않은 탓이리라.

이래저래 하루가 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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