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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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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


BY 蓮堂 2006-05-03

 


이 방이 왜 이렇게 커 보일까. 부모님이 기거 하시는 방이 예전보다 더 크고 넓어 보이는 이유를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버님이 누워 계시던 아랫목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어지럽게 깔려있던 이부자리도 간곳이 없고 목에 걸려있던 가래 소리도 이미 멎은 지 한참이 지나 있었지만 내 눈과 귀에는 아직도 아버님의 부재가 낯설기만 하다. 방 한 켠에는 한쪽 날개 꺾인 엄마의 구부정한 어깨가 유난히도 가파르게 다가왔다. 방 한가운데 시선을 박고 계시는 엄마의 눈언저리가 벌겋게 짓물러 있었다.

엄마 역시도 아버지의 빈자리가 믿기지 않은 듯 연신 아랫목을 손바닥으로 닦는 시늉을 하시면서 ‘매정한 양반’이라는 푸념만 수없이 쏟아 놓으셨다. 두 분이서 같이 보낸 햇수가 환갑 진갑을 앞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성에 차지 않은 엄마의 욕심을 나무라기엔 엄마의 상심이 너무 깊다. 자식들 앞에 내색하기가 민망하셨던지 겉으론 ‘홀가분하다’라는 말로 은근슬쩍 아버님의 부재를 인정 하시는 것 같았지만  밤이면 소리 없이 어깨 들먹이는 엄마를 조용히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두 분이서 나란히 누워 계시던 자리엔 엄마 혼자서 새우처럼 오그리고 억지 잠을 청하시는 게 눈에 보였다. 더 줄어든 엄마의 토막 난 키가 한 뼘 안에 들것 같다. 한쪽이 무너져 버린 비대칭이 또 한번 내 가슴에 메스를 들이대는 것 같다.

어지간해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깊이를 알 수 없는 엄마의 마음에 갑갑증이 나기도 했지만 속을 터놓지 않으셔서 아랫사람이 처신하는데 걸림돌이 되기 일쑤였다. 희로애락의 분명한 경계선마저도 속에다가 꼭꼭 숨기고 혼자서 속 앓이 하시는 것을 못내 못 마땅하게 여겨온 나였다. 천성이려니 했지만 그 천성이 울화로 번질까봐 우려해서였다. 혼자서 삭이고 누르면 모두가 편하다는 엄마의 이론이 자식들을 불효자로 만드는데 일조 한다는 것을 모르고 계신다.

엄마를 고생 시키고 시퍼른 서슬로 자식들 오금에 못을 박았다고 일부러 아버님 험담을 하기도 하고 생전에 엄마가 지어주신 별명을 가지고 흉을 보기도 했다. 맞장구치시는 엄마의 눈빛이 어지러이 흔들리고 있음을 왜 모르겠는가. 아버님을 흉보고 험담하는 자식들 가슴엔 비수보다도 더 예리한 아픔이 핏줄 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립고 보고픈 맘을 험담과 흉으로 덮어 보려는 자식들의 엉큼한 속내를 엄만들 모르시랴.

아버님의 유품이랄 것도 없는 것들이 엄마의 손끝에 달려 나왔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자리보존 하신 뒤로는 그전에 소용 되던 것들은 모두 버렸다고 은근히 자식들에게 서운한 맘을 내 비치셨다. 그렇지만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자식들로서는 당연한일이었다고 변명을 하고보니 유품이 너무 보잘 것이 없었다. 속옷 겉옷 모두 합쳐봤댔자 라면박스 2개정도였고 이부자리와 슬리퍼 한 켤레가 고작이었다.

여든 해를 훌쩍 넘기신 삶의 흔적이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어서 돌아서서 눈물만 찍어냈다. 아무리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라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쥐고 가실 것이 없는지 죄스럽고 면목 없어서 유품을 정리하는 손끝에 힘이 빠졌다.

건강하게 움직여야만 소용되는 것들도 덩달아 많아진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느 한부분이라도 장애가 있으면 그만큼 소용 되는 것도 줄어들기 마련인 모양이다.

거동이 불편하심으로서 많은 것들이 버려지고 녹이 슬어졌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사 드렸던 남방이 헤어지지도 않은 채로 불속에 던져 졌다. 아까워서 아끼다가 걸어놓고 두고 보신 게 틀림없다. 왜 안 입으셨냐고 때늦은 타박을 엄마에게 해댔다.

“네가 사 준거라서....... 너를 보듯이 보려다가..........”

“이렇게 태우려고?.......”

토막 치는 말끝을 잡고 기어이 속울음을 쏟아냈다.


구멍이 나서 황량한 자리.

그러나 어느 누구도 메꾸지 못할 자리.

그러기에 그 빈자리가 더 너르고 헛헛해 보여서 가족들의 한 쪽 심장에 단단한 옹이가 박히는 자리였다.

혹자는 그런다.

천수를 누리셨고, 살아생전에 험한 것 보시지 않으셨고, 부처님의 품안에서 영생 하실거라고...........

조실부모한 사람들에겐 어줍잖은 투정으로 보여 질것이고 배부른 욕심이라고 혀를 찰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가슴 한 쪽에선 아직도 일고 있는 찬 바람에 잠 재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