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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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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잃은 시월의 마지막 밤


BY 蓮堂 2005-11-01



  아무리 질끈 감아도 초저녁부터 꼬리를 감춘 잠은 쉬이 찾아들질 않는다.
좋은 친구들과의 하루 산행이 하루의 피로를 몰아 올 줄 알고 일찌감치 자리에 들었지만 얽혀드는 상념 때문인지 또렷이 맑아지는 머리 속은 밤을 잊은 듯 하다.
매년 찾아드는 계절병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스산해 지려는 마음의 울타리가 자꾸만 영역을 벗어난다.
그러나 영역을 벗어나도 막상 머물만한 안식처는 보이지 않고 손끝으로 더듬더듬 감을 잡아보지만 어느새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는 허전함에 오싹 한기가 든다.
유행병 처럼 번져나간 어느 대중 가수의 노래 때문만은 결코 아닌데 매년 이 시기가 되면 한번씩 겪는 알레르기병 같이 참을수 없이 지끈거리는 통증이 있다.
버릇처럼 play 버튼을 눌렀다.
누워서 손을 뻗으면 언제나 손가락 끝이 버턴에 닿도록 머리맡엔 CD가 걸려있는 작은 오디오가 서서히 음을 토해낸다.
매일 갈아 끼우는 CD가 게으름을 부린 탓에 며칠 전에 걸어 놓았던 Carry & Ron의' I.O.U'가 그대로 윙윙 돌아간다.
갑자기 짜증이 난다.
어제까지만 해도 입속에 넣고 흥얼거렸던 'I.O.U'가 갑자기 지겹다는 간사한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는 오래전에 방영된 모 방송국의 드라마 삽입곡으로 올드 팬(old fan)을 사로잡은 저력 있는 노래였고 그 드라마 내용이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내용으로 대리만족 하는데 한몫하기도 했다.
비록 국민 정서를 해치는 불륜 드라마로 분류 된 탓에 국정감사에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더 공감을 하고 시청률이 오른 건 무얼 반증 하는 것이었나를 생각하기도 했던 그 드라마보다도 이 노래를 더 좋아했던 나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그리고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내 속에 일고 있는 파장의 높이는  걷잡을 수 없이 위로 치솟았고 그리고 끝내는 붉은 눈시울로 끄집어내려야 했다.
속내를 드러내 놓지 못하는 나 혼자만의 속앓이가 있었기에 미치도록 빠져 들었던 그 노래가 갑자기 찍찍거리는 불협화음으로 찢기워지는 것 같아서 내려놓았다.
닮아 있었다.
노래와 그 드라마가 구석구석 같은 빛깔 같은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시간에 그것이 싫어서, 그것을 거부하고 싶어서 멀찍이 던져 놓았다.
아닌 척 시치미 떼는 몸짓과 전혀 다른 얼굴로 촘촘히 꽂혀있는 시디를 훑다가 내 손에 잡혀온 건 아주 오래전에 인연을 맺었던 어떤 스님이 일부러 구워 보낸 불교명상음악이다.
음악광인 나에게 여러 곡을 파일로 보내 주기도 했는데 들을 때마다 거듭 나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수 십 번 반복해서 듣다가 컴을 포맷하는 과정에 다 날아가 버려서 안타까워  했더니 이번엔 아예 통째로 구워서 보내 주었건만 무심하게 밀어 놓았던 게 슬며시 미안한 맘이 들어서 일부러 라도 들어야 하는 의무감이 생겼다.
주로 스님과 불자가수들이 부른 찬불가인데 대중가요 하고는 또 다른 감정의 기복이 생기는 불교음악이다.
종교음악이 다 그렇듯이 갓 잡아 올린 생선같이 펄떡거리던 심장의 파장 폭이 노래를 들음으로서 수평으로 쭉 밀려가는가 하면, 활시위같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핏줄이 느슨하게 풀어지기도 한다.
인위적으로 각을 세운 빳빳한 가공음이 있는가 하면 추녀 끝 풍경소리 같은 은은함도 있고, 산속 개울물 소리, 자연이 빚어낸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도 틈틈이 끼어든다.
괜스레 눈물을 찍어 내는 청승도 떨어야 듣는 기분과 어깨 높이가 맞을 것 같아서 턱 끝으로 치밀던 울컥거림을 속으로 비벼 넣으며 잠을 불러 보지만 심진스님의 '무상초'만 상념의 언저리를 배회 할 뿐이다.

덧없이 흐르는 게 세월이라 구름처럼 흘러 흘러
나는 지금 어디메뇨 마음의 님을 찾아
얽히고 설키었던 인연타래 한올 한올 풀다겨워
돌아보니 머문자리 무상초 홀로 피어
세상사 색즉시공 구경열반 공즉시색 무상 심심
미묘한 듯 잎새끝에 달렸구나 형상없는 무딘마음
홀연히 벗어놓고 불암불암 개골가락 절로 흥겨우니.........중략

노래든 드라마든 새삼스러이 내 얘기를 하고 있는 듯한 가사나 내용에 내 삶을 대입 시켜 볼때가 종종 있다.
때로는 절절하게, 혹은 소름이 돋을 만큼 절실하게 영혼을 움켜지기도 한다.
책을 읽든 노래를 듣든 리얼하게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면 너무나 눈물나게 반가운 일이겠지만 공감대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꿈이었으면 했다.
내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乖離)를 이기지 못하는 나약함 때문이지도 모른다.
옹골차지 못한 무른 성격이 항상 뒷북을 쳐야하는 우유부단함이 싫어서 나 자신에게 침묵으로 항변한 적도 많았다.
나 자신에게만은 솔직해지자고, 나 자신에게만은 비겁 떨지 말자고 새해가 되면 밥 먹듯이 쉽게 약속을 했지만 사흘도 못가서 흐물거리는 말 그대로 '작심3일'이 매년 되풀이 된다.
나에게 남아있는 삶의 잔고는 과연 얼마나 될까를 셈 해보니 하루 같기도 했고 일년 같기도 했다.
후하게 인심 써서 몇 십 년을 잔고로 남겨두었지만 자신 있는 날이 아니라는 계산도 덧  붙혀 놓아야 했다.
내가 과연 인심 써서 남겨 놓은 날 까지 한 올의 티도 없이 살아질 수 있을지 역시 미지수지만 언젠가 일러준 점쟁이 말에 의하면 팔십은 느끈히 살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은근히 믿고 싶어지는 삶에 대한 끈은 질기기만 하다.

오래오래 살고 싶은가........
왜 오래도록 살고 싶은가.......
내 한 몸 스러지면 그만인데 어디에 미련을 두고 무엇에 욕심이 뻗혀 있는가.....
버려라....
그리고 잊어라.........

나옹 선사의 '청산은 나를 보고...'는 항상 내 가슴을 비워놓는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