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 딸아이를 두고 금(金)값이라는 높은 가격을 매기는가 하면 상한가를 쳤다고 은근히 부러워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뻣뻣하게 목에 깊스하고 배 내밀면서 다녀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는 소리지만 웬 지 그리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내가 별종으로도 비춰질 수도 있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기사를 보고나니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일등 신부감의 조건]
첫째 : 연봉 2500만 원 이상이어야 하고
둘째 :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
셋째 : 서울시에 거주.
부수적으로 장인 될 사람이 경제적인 능력이 있거나 평생 딸에게 기대지 않아도 될 만큼 재산이 있어야 하며 처남은 꼭 있어야 함.
내 딸아이는 세 번째 조건하고 부수적인 조건, 즉 가지고 있는 재산이 없기 때문에 일등신부감엔 들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 손바닥만한 지방에서는 부수적인 조건은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현직 교사라는 직업 하나만으로도 높은 가격을 매겨준다
인성이나 가정환경 또는 집안내력, 병력은 아예 조건에 들지 않고 추가로 한 두 마디 건넬 수 있는 사소한 조건에 속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멀찍이 밀쳐두고 살면서 유동성 일 수 있는 재산이나 직업만 가지고 평생을 좌우할 배우자로 점찍는 현실이 혼기를 앞두고 있는 딸아이를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입맛이 그리 달지만은 않다.
시대가 변할수록 배우자의 조건이 점점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변해 가는 현실을 무턱대고 잘못되었다고 나무랄 수는 없다.
가파른 물질만능주의에 편승하다보니 거부할 수 없는 고정사고가 되어 버린 것이다.
중매결혼 한 나는 내 스스로 배우자를 고르는 연애는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까다롭고 대쪽같은 아버님 입맛에 맞는 사람 구한다는 게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 했기에 내 운명은 아버님에게 일임해 놓아야 했다.
아버님이 내 남편에게 점수를 준건 딱 두 가지였다.
어른을 알아보고 인사성이 밝다는 것 - 이 기본적인 것만 갖춰져 있다면 다른 건 볼 것도 없다는 거였다.
지금껏 살면서 아버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흔들림 없는 남편의 그 맘 하나가 富를 초월했고 명예를 가지려고 술수도 쓰지 않았으며 지위를 얻으려고 남을 밟지도 않았다.
주어진 환경에 충실했으며 최소한의 여유만 있어도 만족 해 하는 소시민의 틀을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자칫 한계점에 다다른 무능력으로 비춰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사는데 그리 욕심을 내지 않아서 때론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게 사는데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어느 날 딸아이가 결혼상대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갑작스런 질문에 좀 놀랐지만 언젠가 한번은 받아주어야 할 질문이기에 나 또한 신중하게 대답을 했는데 그 대답이 내가 생각해도 좀 낯간지러운 소리였다.
"성실하고 솔직한 면은 네 아빠만큼만 하면 안 될까"
딸아이는 환하게 웃는다.
"맞아요 엄마.. 울 아빠만큼만 백지인 사람 있으면 저 결혼 할 것 같아요"
' 아빠 같은 사람 싫다' 라고 눈에 핏발 세우며 아비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영되던 어느 드라마가 생각나서 딸아이를 대견하게 쳐다보았다.
아빠를 배우자의 모델로 삼고 있는 딸아이가 너무 고마웠다.
속깊고 정이 많아서 나 보다는 남을 우선으로 배려하는 딸아이의 고운 심성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반듯하게 보아주는 사람 하나라도 있다면 두팔 벌리고 싶어진다.
"요즘 여교사가 금값이라고 하는데....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딸아이는 뭔가를 한참 생각하는 눈치다.
"엄마.. 제 조건보고 값 매겨서 결혼 하려는 사람 전 싫어요"
"세상이 다 그런데 어쩌겠니?"
"그래도 전 그런 세상에 떠 밀려 가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어요 "
딸아이는 자기가 갖고 있는 교사라는 직업이 평생을 좌우할 잣대로 매김 당하는 게 싫은 거였다.
어쩌면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가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물다섯 해 동안 차곡차곡 쌓여있는 자기 가치관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딸아이가 너무 기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