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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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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사건 (1)


BY 蓮堂 2005-10-11

난 고양이를 참 싫어한다.
괴기영화나 미스테리 영화에서 공포감을 배가 시키는 장면에서는 이 고양이가 꼭 출몰해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는데 그래서 무섭고 싫어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고양이에게 활키고 난 뒤에는 고양이 소리만 들어도 등에 소름이 돋는다.
시어머님은 짐승을 유난히도 좋아 하셔서 살아생전에는 늘 개나 고양이를 식구의 일원으로 여기고 끼니도 거르는 법 없이 꼬박꼬박 챙겨 먹였다.
생산가게에 가시면 생선내장이나 뼈를 한보따리씩 얻어다가 싸래기에 섞어서 끓여주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고, 겨울이면 추울세라 헌 이불을 갖다가 바닥에 깔아 주기도 했다.
개가 새끼를 낳으면 팔아서 용돈으로도 충당 하셨고 숫놈은 씨를 빌려주고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씩 얻어서 수입을 올리는 재미에 더 애지중지 하셨는지도 모른다.
비가 오거나 날이 궂은 날에는 개 냄새가 유독 더 났지만 시어머님이 아끼는 동물이고 또 시어머님의 용돈을 조달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괄세도 못하고 시댁에 갈 때마다 무척 곤혹스러워도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짐승 털 알레르기가 있는 아들 녀석은 시댁에만 가면 눈이 부어올라 안약을 갖고 다닐 정도로 심해서 할머니 댁에 안 간다고  떼를 쓴 적도 있었다.
부엌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도 개집에 묶여있던 개들 - 많을 땐 열 마리도 넘었다 - 이 밥 달라고 난리를 쳤고 곳간에 드나드는 쥐 잡으려고 키우고 있던 고양이는 하루 종일 싸돌아다니다가 끼니때만 되면 용케도 찾아 들어서 부엌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 번들거리는 눈알을 굴리면서 입맛을 다시는 거였다.
고양이하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외면을 할 정도로 무섭고 싫었다.
한번은 발에 걸리적 거리길래 미운 맘에 냅다 찼더니 이놈이 죽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고양이 비명 소리를 듣고 방에서 쫓아 나오신 시어머님은 못 마땅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눈알만한 고양이 밥그릇에다가 저녁이랍시고 생선뼈를 퍼 주었더니 고양이는 배부르면 쥐를 안 잡는다고 하면서 저녁은 주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지 않아도 주는 거 없이 밉던 차에 고소를 금치 못하고 고양이를 곳간으로 몰아넣었다.
"후후, 네 저녁은 그 곳에 버글거리니까 포식을 하던 과식을 하던 골라서 잡셔."
그리곤 곳간 문을 잠궈 버렸다.

그런데 고양이를 곳간에 가둔 날 밤에 어린애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이 비명 지르는 소리 같기도 해서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보니 잠궈 놓은 곳간이었다.
무서운 생각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곳간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니 세상에.....
불을 켜자마자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던 쥐들이 뿔뿔이 숨느라고 구석으로 자취를 감추는 게 목격되었는데 쥐 잡으려고 쥐틀 놓아 둔 곳에 고양이  뒷발목이 끼어 있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임무를 소홀히 하자 시어머님이 대신 이 쥐덫을 놓아두었는데 고양이란 놈이 업무태만의 죄를 고스란히 덮어 쓰고 쇠고랑을 차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 밤 쥐들은 이 기상천외한 광경을 루루라라 즐기고 있었던 걸 연상하니 세상 이치가 참 묘하게도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이 쥐틀에 끼인 고양이의 눈에서는 살벌한 시퍼른 불꽃이 튀는 게 역력히 보일 정도로 고통스러워서 몸부림 친 흔적이 보였다.
하는 짓은 미웠지만 불쌍하고 저녁 굶긴 게 맘에 걸려 쥐틀을 벌리려고 손을 갖다대는 순간 그놈이 번개 같은 동작으로 내 손등을 할퀴는 거였다.
아마 내가 해고지 하려는 것으로 알고 공격을 한 것 같았다.
발톱이 얼마나 날카로웠는지 깊게 패인 손등에서는 검붉은 피가 꾸역꾸역 솟아올랐다.
피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내 비명을 듣고 달려 나온 남편이 겁도 없이 맨손으로 쥐틀 벌리려고 한 나를 보고 미련하다고 혀를 찼다.
그러나 나보다도 고양이에게 먼저 달려간 시어머님의 발 빠른 그 행동이 두고두고 서운했다..
다음날 날이 새기가 무섭게 약국엘 갔더니 짐승 독은 무서우니까 좀 강한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는 약사의 엄포에 지금 기억으로는 약명이 무언지 모르는 500mg짜리 마이신을 먹었는데 이게 또 탈이 났다.
약을 먹은 뒤에 약이 너무 독했는지 위장장애를 일으켜서 일주일 이상 병원엘 드나들면서 위(胃)치료를 받아야 했다.
짐승을 미워 한 죄 값을 톡톡히 치루었고 또 반성 할 기회를 준 사건이었지만 여전히 난 고양이를 이뻐하진 않는다.
요즘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도둑고양이가 떼를 지어서 쓰레기통을 뒤져 놓아 경비원이 아주 몸살을 앓고 있다.
게다가 짝짓기 하느라고 밤새도록 어린아이 우는 소리를 내서 아파트 주민들의 잠을 빼앗곤 하는 요물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때 그 끔찍했던 사건이 생각나서 손등을 훑어본다
왼쪽 손등에는 초승달 만한 흉터가 훈장처럼 박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