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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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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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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소유


BY 蓮堂 2005-06-26

 혼자 있는 공간은 왜 그런지 더 여유롭고 넓다는 느낌을 받는다.

 달랑 두 식구 남은 집안이 그리 협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하루라도 집을 비우는 날이면 괜히 풍선처럼 부풀려진 자유로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뾰족하게 특별 난 스케줄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평소보다도 더 바쁘고 더 허둥댄다.

 비어있는 한정된 시간 안에 갑자기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예정에도 없이 실밥 터지듯이 미어져 나오면 우선 순위에 골몰하게 된다.

 평소에도 낮 시간은 온통 내 시간이지만 하룻밤을 꼬박 비우는 남편의 자리는 또 다른 내 시간을 몇 배의 공간으로 넓혀 준다.
 밤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고작 혼자 놀고 혼자 즐기는 pantomime일 수밖에 없는 그 시간을 왜 그리 반기는지 모르겠다.
 예전보다는 내 시간을 더 많이 허용해 주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별로 브레이크 거는 남편이 아니지만 옆에 있으면 괜히 걸리적 거리는 느낌으로부터 난 자유롭지 못했다.
 같이 대화하고 같이 나들이 하는 걸 좋아하는 남편의 기호대로 따라 주어야 하는 것도 중요한 내 일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속된 말로 '지 팔 지 흔들기'의 그 개인 플레이를 참으로 싫어하는 남편이었다.
 무엇이든 공유하고 투명하게 드러내어서 한 점 의혹 없이 살아야 된다는 남편의 定石論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진 않지만 때때로 내 것도 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내 삶의 지론이었다.

 눈치 없이 하룻밤 남편의 부재를 희색이 만연한 표정으로 반겼다가 직격탄을 맞은 적이 있다.

 "이 사람은 내가 아주  없어지면 엎드려 절이라도 할 사람이구먼..........."

 서운한 말투 속에 뾰족한 가시를 박고 철없는 마누라를 한심한 듯 쳐다봤다.

 자기 없으면 허전해서 어쩌냐 하는 마음에도 없는 액션이라도 부려 주었다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상기하며 더 자부심을 가질 남편인데 너무 곧이곧대로 얼굴에 그대로  퍼 올린 나의 머저리 같은 행동이 미안했다.

 "그게 아이고..............."

 차라리 궁색한 변명보다도 미안한 웃음 한번 지어주면 좋건만 기를 쓰고 부인 할려고 한 얕은 소갈머리를 남편이라고 눈치가 없을라.

 "됐네...... 이 사람아.......ㅉㅉㅉ"

 해방된 자유로움은 비단 나뿐만 아니건만 굳이 나 혼자만 풀려난 느낌이 드는 건 무슨 조화 속인지 모르겠다.

 집을 떠나서 만나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 곳 부담 없이 가는 사람이 더 자유로운 게 아니냐는 반박을 못해 준 게 못내 아쉽고 아깝다.

 

 혼자 있는 밤 시간은 참으로 길다.

 엿가락처럼 늘어난 이 시간엔 무엇을 해야 할지 갑자기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벽에 걸린 시계의 촛침이 멈추어 있다.

 무언가 시도를 하면 그때부터 촛침의 숨가쁜 움직임에는 가속이 붙을 것 같아서 꼴깍 침을 삼켜 보았다.

 CD를 걸면서 stop watch의 버턴은 동시에 눌려졌다.

 손에 잡히는 대로 건 CD가 흘려낸 곡은 공교롭게도 이 시간을 만끽하기엔 분위기가 딱 이다.

 Elvis Presley의 'Are you lonesome tonight'...

'오늘밤 외로우신가요?라는 타일틀인데 별로 자주 듣는 곡은 아니건만 희한하게도 맞춤형이다.

 

 오늘밤 외로운가요?

 내가 그리운가요?

 우리의 이별을 후회하나요?

 사랑을 속삭이던 그 밝은 여름밤을 기억하나요?...........

 

 괜히 웃음이 나와서 실실 웃었다.

사실 남편이 있다고 해서 내 행동에 어떤 제약을 받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둘이서 차지한 공간이 절반은 내 것이 아니라는 불완전소유의 흑심이 못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존재는 영원히 내 곁에서 온전하게 내 것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당연함 안에 짧고도 가느다란 틈이 잠시라도 허용됐으면 하는 나만의 욕심을 내어 봤다.

 잠시 밀쳐 두었던 책을 펼쳐 들었지만 이 절묘한 시간에 해야 할 일 아닌 것 같아서 몇 장 넘기다가 그대로 덮어 버렸다.

 옷장을 열고 한 켠에 묶어두었던 보따리를 풀었다.

 그 안에는 오래 전에 어떤 知人으로부터 받은 편지하고 명함 그리고 수첩이 들어 있었다.

 깨알같이 빼곡이 적어 두었던 일상의 자질구레한 얘기가 들어있는 수첩 속에는 1976년도에 '문경군수'가 발행한 공무원증과 명찰이 낯설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여기 있었구나.....
 그래도 한때는 이걸 가슴에 달고 자부심과 긍지 가지고 젊은 시절 후회 없이 보낸 적이 있었는데 이젠 되돌아볼 나이가 되었구나.....
 갑자기 숙연해 지고 약간은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신 기분이 들었다.

 사실은 이 보따리 안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도 모른 채 보따리 속의 내용물이 궁금해서  열어 보았는데 가물거리는 기억력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마 별로 열어 볼일이 없는 것만 골라서 묶어둔 것 같은데 새삼스러워 지는걸 보니 그래도 나에겐 소중했던 소지품이었던 같았다.

 옷장정리를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이런 일은 남편하고 같이 있을 때도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 스트레스 받았을 때 난 옷장 정리하는 버릇이 있다.

 TV를 켜 봐도 산뜻한 게 없다.

 순조롭게 돌아가던 CD가 먼지가 끼었는지 꺽꺽 거리며 숨을 헐떡거린다.

 갑자기 할일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자 약간은 반가웠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미주알 고주알 수다 떨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까지 내 주변의 친구들 중 혼자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수다를 떨 수 없어도 너무나 다행스럽다.

 야행성인 딸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잠결에 전화를 받고 놀라는 군바리 아들녀석에게 엄청 미안했다.

 컴을 켰다.

 몇 자 긁적이다가 벽을 만났다.

 글이라는 게 맘먹고 쓸려고 하면 희한하게  막혀 버린다.

 가끔씩 머리 식히던 고스톱창을 열었지만 많지 않은 보유 금액을 수억을 가진 놈한테 다 털리고 알몸으로 쫓겨 나왔다.

공짜 돈 받아놓고 그냥 나와 버렸다.

가입한 사이트에 들어가서 방안 공기 한번 둘러보고 별다른 글이 없기에 대충 읽어보고 컴을 꺼 버렸다.

 온통 내 것 같았던 이 시간이 내가 소유한 만큼 나에게 할애하고 있는 '할 일'과 '해야할 일'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

  한가한 자유의 한계가 오히려 시간을 쪼개면서 내어준 시간보다도 더 효용가치가 떨어진다는 게  하룻밤 새 내가 발견해 낸 완전소유에 대한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