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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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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속으로...


BY 蓮堂 2005-06-07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움직이지마!!~~~~~~'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동네 어귀에서 친구들과 목청 높혀 부르다가 어느 싯점에서  술래가 멈추라고 고함을 지르면 일제히 멈춰야 했다. 움직이거나 웃으면 레이더에 걸려서 술래가 되어야 했다.

빙글빙글 술래 주위를 돌다가 술래의 구령에 따라 용케도 몸의 균형 안 흐트리고 제자리에 우뚝 섰는 모습이라든지 웃음 을 참느라고 팽팽하게 당겨서 터질 것 같았던 내 아이들의 양 볼이 문득 생각났다.

 

 지금,

귀는 열려 있지만 아뭇 소리도 듣지 않으리라, 숨소리 한 가닥이라도 이 순간만은 모두 어디론가 흡수되어서 차라리 귀머거리가 되어도 좋을 만큼 그때 외치던 술래의 구령에 따라 모든 게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
웃음소리도 우는 소리도 코끝에 딸려 나오는 숨소리마저도......

그래서  아무것도 더 나아가지도, 더 물러서지도 않는 그런 정지된 시간만이 존재되었으면 좋겠다.

눈도 달려 있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으리라, 내 의식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모든 줄기를 통째로 가닥가닥 잘라서 내 눈앞에서 까맣게 태워 버렸으면 좋겠다.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입도 뚫려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 목 줄기를 움켜쥐고 있는 이 고통을 속으로 쑤셔놓고 시치미 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지금 내가 무엇을 하러 가는 지 전혀 관심 두지 않으리라.

알 필요도 없고 안다고 해도 모른 척 하리라.

나에겐 눈도, 귀도, 입도 그리고 의식도 통째로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러나 한번은 눈을 뜨야 했다.

입원실에서 수술용 침대위로 나를 옮겨 들어 올리던 아들녀석의 겁먹은 눈동자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이 싯점에서 남편보다는 아들녀석이 더 애처로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남편은 태산이었고 아들녀석은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모래성 같아서 그리 하리라.

그런 아들녀석에게 눈을 뜨서 한번쯤 웃어 주면 녀석은 안심하겠지.

아들녀석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석고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웃어 줄려고 입자위를 움직여 보았지만 입보다는 눈이 먼저 물을 쏟아 내었다.

차가운 물기가 누어있는 머릿속으로 홍건히 스며들었다.

내 손을 잡고있는 아들녀석의 체온이 불안과 긴장으로 얼어있던 몸 속을 타고 들어왔다.

돌돌돌 수술용 침대가 굴러가는 바퀴소리는 미처 빗장 지르지 못한 귓속을 더듬었다.

감은 눈꺼풀위로 사정없이 퍼붓는 불빛, 두런두런 사람들 말소리, 바쁘게 움직이는 발소리, 달그락 그리는 수술용 의료기구들 부딪히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무방비상태로 열려있는 귀는 통제가 되지 않았다.

이럴 땐 무얼 생각해야 저 소리들을 밖으로 쫓아 낼 수 있을까.

그래...

노래를 불러 보자.

뭐 였더라. 내가 즐겨 부르던 노래가 뭐였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수술 후에 들을려고 가지고 온 테잎이 적지 않은데 왜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걸까.

아,, 맞다....'친구'....

안재욱의 '친구'...

그런데 첫 가사가 뭐더라. 뭐더라..

첫 가사만 풀려나오면 뒷말은 자연스러이 따라 나오게 되어 있지만 전혀 모르는 노래 가지고 실갱이 하는 것 같았다.

아..미치겠다....첫마디만 알면 저 듣기 싫은 차가운 쇳소리는 듣지 않아도 되는데.

"이영숙씨, 자..숨을 크게 들이쉬시고요......"

차가운 금속소리보다 더 얼음장같은 간호사의 마지막 지시가 애써 가사 찾으려고 머릿속 헤집는 생각의 타래를 잡아채었다.

들이 쉰 콧속으로 난생 처음으로 맡아보는 진한 마취약이 스물스물 기어들어 왔다.

남들이 그러대.

하나에서 열까지 다 세면 마취가 안 되는 거라고.

난 어디까지 셀 수 있을까.

 

하나.............두울...................ㅅ

 

 

누군가가 내 양 볼을 툭툭 건드리는 것 같았다.

"이영숙 씨, 눈 떠 보세요...눈 떠 보세요..."

눈을 뜨라... 눈을 뜨라는 주문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내 눈은 내가 뜨고 싶으면 뜨는 거고 감고 싶으면 뜨는 건데 자꾸 눈을 뜨라고 재촉을 한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어딘지가 중요 한 게 아니고 잠을 자야 한 게 더 중요한 건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고 찹쌀 풀 멕인 모시적삼같이 엉켜 붙은 내 눈꺼풀이 아래위가 분리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꾸 잠이 온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자꾸만 내 수면을 방해하면서 연신 이름을 불러대는 통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눈을 뜨시고 저를 보세요......"
억지로 벌려진 내 눈꺼풀 사이로 초록색 수술복과 하얀 마스크 그리고 번들거리는 어떤 남자의 안경알이 먼저 쫓아 들어왔고 천장에 매달린 둥그랗고 하얀 불빛이 여기가 어딘지를 가늠하게 해 주었다.
TV나 영화에서 보면 이런 장면은 흔히 수술할 때 몇 컷씩 보여주는 장면인데 그럼 여기는 수술실인가
내가 수술을 받았다고?
잠싯 동안 머릿속에 혼동이 왔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가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아주 잠시동안이지만.
그래 그랬구나, 내가 수술을 받은 거였어.
그 길지 않은 시간동안 난 없어진거였구나.
이 딱딱한 침대 위에다가 육신을 버려 둔 채 혼은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가 이제 용케도 제자리 찾아온다고 느린 걸음으로 물 스며 들 듯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와 앉았나보다.
어디를 다녀 온 걸까.
길이라도 잃어버릴까봐 불안해서라도 쉬이 떠날 수 없었을텐데.....

그러나, 나를 잃어버린 채 밑 없는 나락 위를 휘적휘적 젓고 다녔을 내가 번짓수라도 외우고 다녔는지 어김없이 나를 찾아 주었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구전(口傳)에 의하면 자는 아이는 얼굴을 닦아주지 말라고 했다.

자는 사이에 혼이 빠져나가는데 이 혼이 나갈 때의 모습과 들어올 때의 모습이 달라지면 번짓수 잘못 짚은 줄 알고 다른 사람 몸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금기되었던 일종의 터부였지만 내 모습이 달라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잊지 않고 찾아든 내 혼이 참으로 갸륵하고 기특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지?

엉켜있던 머릿속이 가지런히 정리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