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오른쪽 아랫배가 영문도 모른 채 따끔거려서 예민한 내 신경을 긁었다.
간헐적으로 수반한 통증이 여러 가지 병명을 끌어다 붙이게 했지만 의사에게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나름대로의 무식한 소견만 짐작할 뿐이었다.
냇과적이거나 혹은 산 부인과적인 게 확실하지만 보기 흉한 자세로 진찰대위에 올라가서 남자의사 코앞에 들이밀어야 하는 게 곤혹 스러워서 산부인과는 못 가겠고, 내장 속에 긴 대롱 집어넣고 휘저어 댈까봐 겁이 나서 냇과도 죽기보다도 더 가기 싫었다.
그렇다고 그냥 있자니 불안하고 병을 더 키울 것 같아서 가슴속엔 단 돌덩이가 점점 커져나갔다.
우리 몸엔 선천적인 면역성이 있어서 웬만한 병은 스스로 치유되는 만병통치약이 있으니까 조금만 더 미련을 떨어보고 싶어서 아침에 출근하면서 병원 가보라는 남편의 엄명(?)도 묵살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훑고 다녔다.
스산해 지려는 맘을 붙잡아 둘려고 붓을 들고 화선지를 펴 놓았지만 손끝이 떨려서 글씨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가로 획 세로획이 구불거렸고 날획 별획도 중간에서 동강나고 말았다.
팔에 힘이 땀구멍으로 다 빠져 나가는것 같았고 손가락에 쥐가 나는것 같기도 했다.
이젠 몸의 기능까지 내맘대로 따라주지 않는게 아닐까
갑자기 온몸에 울퉁불퉁 커다란 요철이 생기는 것 같은 형상에 몸이 떨려왔다.
거울을 보니 고양이 세수로 물만 끼엊다 만 얼굴이 푸르스름해 졌다는 착시현상까지 생겼다.
화장 안한 얼굴이 참으로 별 볼일 없다는 생각에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Melanie Safka의 'The saddest thing'를 틀어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일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녕 이라고 고하는 것'이라는 가사로 시작부터 웬지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장 슬픈 것들'이라는 이 노래는 유럽 전역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이 노래에 도취한 수많은 음악 메니아들이 너무 슬픈 나머지 자살을 했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분류되었던 건데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역시 자살을 했다고 했다.
기분이 아래로 가라앉을 때는 경쾌한 노래보다는 이 노래를 듣곤 했지만 내 귀가, 아니면 내 감성이 무딘 탓인지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염세적이진 않았다.
쉰 듯한 사프카의 음성이 목안에 이물질을 넣고 있는 것 같이 중간중간이 목에 걸리었다.
그래....
내가 죽었을 때 가장 슬픈 일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아픔을 주는 일이겠지...
노래가사처럼 '그동안 고마웠어요' 라고 마지막 염치로 맘속에 여유를 부릴 공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문득 살아서 미리 유서(遺書)를 써 둔다면 어떨까..
내 앞으로 된 재산이 없으니 내 자식들 간에 재산 다툼이 일어날 일은 없으니 공증을 받을 필요는 없겠고 기껏 남길 말이란 그저 잘살고 잘 있으라는 싱겁고 하나마나한 말밖엔 남길게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름대로는 남기고 갈게 너무 많다.
집안을 휘 돌아보니 내가 죽고 나면 나를 그리워하고 나를 기억할게 너무 많아서 우리 가족들은 심장이 터져서 지레 죽을 것 같은 생각이 오버일지는 모르지만 내 흔적이 너무 짙게 달라붙어 있어서 쉽게 떨쳐지지는 않을 것 같다.
죽는 사람은 숨이 멎는 그 순간부터 모든걸 손에서 놓아 버리지만 남아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할게 너무 많다.
지금까지 자기 손으로 손수건 한장 빨아본 적이 없고 숟가락 하나 씻어 본적이 없는 남편,
조그마한 충격에도 큰눈에 눈물 그렁 거리며 쉽게 주저 앉을 햇병아리 교사 딸아이,
아직도 유아기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철없는 군바리 아들녀석,
그리고 먼 길 눈앞에 두고 계시는 연로한 부모님, 형제들, 친구들........
발끝에, 손끝에서 떨쳐 버릴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그들을 버리고 나 한몸 이 세상 밖으로 도망쳐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좁다는걸 느꼈다.
내가 버리고 갈 건 비단 사람 뿐만 아니었다.
애지중지 내 손끝에서 숨쉬고 있는 베란다 그득한 화초들이 나 없으면 굶어 죽을것 같고
읽기를 미처 끝내지 않은 달라이라마 스님의 '용서' 도 마저 읽어야 했다.
다음달 초에 있을 모 출판사의 신인 작가상 수상식에 가서 상도 받아와야 했다.
또 있다.
며칠후에 있을 장애인 봉사 단체에서 준비된 보리암 여행도 다녀와야 했다.
그저께 얻어온 이름모를 야생란이 꽃피우는것도 봐야 하고, 이 지방 문화제에 전시될 내 작품 - 詩 -앞에서 사진도 한컷 박아야 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명분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아랫배가 왜 따끔거리면서 날 밑빠진 바닥으로 끌어 내리는지 모르겠다.
바늘 끝같은 예민한 내 더듬이가 몽둥이로 둔갑하는 헤프님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이건 내 희망 사항이고 머릿속은 밑도 끝도 없는 어지러운 그림만 그려대고 있었다.
퇴근한 남편이 하얀 본투를 하나 내민다.
특별 보너스란다.
며칠전에 남편친구 부부동반 모임에서 친구 부인이 매달 남편에게서 보너스 받는다는 소리에 내가 입을 빼 물었던게 효과를 본 모양이다.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보너스를 받고 보니 죽을수도 없고 유서는 더더욱 써 놓을수가 없다.
내일은 병원엘 가야 겠다.
가랭이를 벌리든 내장속에 긴 대롱 박아넣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