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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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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덩이 부은 여자


BY 蓮堂 2005-05-15

 

 요즘 간덩이가 부쩍 면적을 넓혀 나가고 있었다.
 전에 없이 남편의 말꼬리에 토를 달았고 필요 이상의 자질구레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부당하든 정당하든 '그래, 당신 말이 맞소...........'
 이렇게 일단은 맞장구를 쳐 놓았다가 기회가 되면 반격을 해서 기선 제압을 할 때가 종종 있었지만 그래놓고 난 뒤끝은 항상 개운치가 않았던 게 지금까지 남편에 대한 대접이었다.
 승기를 잡았다고 해서 기고만장한 적도 없었지만 약간의 의기양양함은 있었다.
 나도 한 성깔 한다는 걸 은연중에라도 보여 주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순간순간 머릿속에서 주판알 퉁기었다.
 어제 일만 해도 그렇다.
 내가 야간 외출하는 이유와 시간 그리고 장소까지 분명히 못을 박고 더 이상의 꼬투리 잡을 여지를 주지 않았다.
 -문협 회원들과 백일장 심사를 해야 했고, 저녁 식사 후에 after가 있을 거라는 사무국장의 귀뜸이 있었다.-
 그러나 하던 짓도 멍석 펴놓으면 우물쭈물 하는 게 여태껏 보여온 내 옹골차지 못했던 처신이었기에 시간이 11시를 넘어서자 조금씩 불안해져 왔다.
 늦는다고 일찌감치 던져놓은 말이 건망증 심한 남편의 머릿속에 이 시간까지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전화를 했더니 숨소리만 들려주고는 그냥 끊어 버리는 거였다.
 황당하고 걱정스럽고 속이 상해서 일행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와중에 슬며시 빠져 나왔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뾰족한 대책도 없이 목청 높힐 일만 기다리고 있을 뿐 마음속엔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속 앓이가 수위를 벗어나고 있었다.
 '까짓거 부딪혀 보는 수밖엔 없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안은 온통 암흑이었다.
난 여태껏 가족 중 어느 누구라도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는 절대로 불 끄트린 적 없는데 남편은 내가 곧 올 거라는 거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온 집안을 어둠 속에  쳐 박았다.
미안해 할려 든 속에서 와락 홧증이 솟았다.
거실 불을 켜면서 볼멘 소리로 슬슬 남편의 의중을 떠 볼려고 했지만 꿈적도 하지 않고 자는 척 하는데 어떻게 첫 마디를 떼어야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잠시 머리를 굴렸지만 역시 하던 대로 해야 될 것 같았다.
"벌써............ 자요?"
끓는 속 누르고 아주 나긋하게 첫 운을 떼었는데............
"벌써라니?..도대체 지금이 몇 시야?........."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있던 이불을 확 젖히며 벽에 매달린 시계로 고개를 꺾었다.
"아직 열두시도 안되었네 머........"
남편의 부아를 돋우는 소린 줄 뻔히 알면서 난 형틀 메고 형장으로 들어갔다.
 "살림하는 여편네들이 이 시간까지 머 하다 오는 거야?"
 앰한 구석으로 몰아 갈려고 작정을 안하고는 이렇게까지 도매금으로 넘길 수 없는 일이다.
 " 당신 전화는 왜 끊는데?...할말이 있어서 전화했는데....왜 끊냐구......"
남편의 시비에 더 이상 걸려들지 않으려고 전화건만 가지고 내 목청을 높혔다.

예전 같으면 내 죽었소, 내 탓이요 로 남편의 기 살려 주었는데 어쩐 일인지 살아 갈수록 자꾸만 억울한 생각이 도를 넘기고 있었다.
해명을 안 하면 억울해서 못 견딜 것 같아서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고 웬만하면 좋은 게 좋다고 대충 짚고 넘어 갔는데 이젠 그게 안 된다.
 육하원칙에 입각해서 분명하게 드러나야 했고 투명하게 속이 들여다 보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빳빳한 성깔이 고개를 숙이지를 않는다.
 따지고 드는 피곤함만은 피해야 된다는 게 내 지론이었지만 이것 역시 이미 테두리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이러이러 하니까 내가 참고 내가 이해하면 되지.......
 이런저런 이유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구나..........
 나  하나 물러지면 가정의 평화가 오는데...........

 남편은 점점 내 반격에 각을 세웠던 눈 꼬리가 아래로 쳐져 버렸고, 툭하면 높이던 언성도 점점 옥타브가 낮아지고 있었다.
 내 간덩이가 부어 오른 데 대한 반사현상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다스리는 중인지는 몰라도 점점 주객이 전도되는 지각변동이 우리 부부사이에 틈을 내었다.
 그러나 , 남편에 대한 끈끈한 연민의 정은 내 간덩이 부피와 비례하고 있었다.
  피곤한 하루의 일과가 주름진 이마 위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고, 어떨 때는 즐겨보는 9시
 뉴스시간까지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자는 모습을 보면 맘속엔 작은 회오리가 친다.
 혹시라도 남편의 심기를 건드린 게 없나, 남편에게 소홀한 게 없었나....
 그런데도 다른 한구석에서는 반란의 싹이 노랗게 싹을 틔우는 건 나이가 듦으로서 나타나는 아주 당연한 현상이라고 - 호르몬 현상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식의 과학적인 근거에 입각해서 - 합리화 시키려 했다.

 남편하고의 사소한 충돌은 길게 가지 않지만 항상 여운의 꼬리는 쉽게 잘리지 않는다.
 별로 넓지 않은 가슴팍 한곳을 깊은 구덩이 파고 점령하고 있었다.
 예전하고 달라진 게 있다면 밖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아주 고차원적으로 발전했다는 거였다.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는 안으로 삭이다가 못 참을 지경까지 가면 혼자서 울던지 남편의 기분이 좋으면 슬쩍 일침을 놓고 남편의 반응을 살피곤 했지만 이젠 드러내놓고 내 감정표현 입으로, 표정으로 쏟아 놓게 된다.
 말하자면 겁도 없어지고 두려울 게 없는 전형적인 '순 악질 여사'의 모습이다.
 내 일을 가졌을 때는 집과 일터만 들락거렸지만 전업주부로 자리 바꿈한 뒤로 행동반경이 점점 넓어지다 보니 남편은 소외되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내 생각이 흑백의 극과극의 턱을 바쁘게 넘나들고 있었다.

' 이러지 말까?.........'
' 에이.....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머........'
'그래도 남편이 불쌍 하잖나..........'
'예전에 나도 많이 불쌍했었다 머........'
'젊었을 때하고 같냐?............'
'늙을수록 내 자리 좀 찾아야지.........'
'같이 늙어 가면서........ㅉㅉㅉㅉㅉ'

그라믄 날더러 우야라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