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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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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은 절대로 밖으로 굽지 않는다.


BY 蓮堂 2005-04-11

 


  하루종일 내 맘속은 지옥이었다.

 삭히고 또 삭혀도 빳빳이 고개 쳐드는 서운함과 자괴감으로 온몸이 불덩이 같이 화끈 거렸다.

 핏줄이라는 게, 한 탯줄을 달고 나온 남매지간이라는 게 팔을 밖으로 꺾지 못하게 옭아매었다.

 한 이불 덮고 사는 부부지간이라서 모든 거 다 수용하고 니꺼내꺼 안 가리고 영역차별 없이 살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이라는 두꺼운 벽이 더 이상의 접근을 차단하고 만다.

 

 교차점을 만들 수 없는 시집 식구와의 사소한 충돌이 내 가슴에는 빠지지 않는 대(大)못으로 박혀 있다. 그리고 그 못이 빠진 자리는 쉽게 메꾸어 지지 않는다.

 당연히 내편에서 날 옹호할 줄 알았던 남편이 어느 샌가 나를 향해 뻗어 있던 손을 슬그머니 거두어서 안으로 꺾어 버렸다.

 어정쩡하게 꺾은 게 아니라 확실하게 각을 세웠다.

 내 논리는 먹혀들지 않았다.

 비록 겉도는 얘기일 망정 내 말도 일리가 있는 얘기라고 슬며시 한군데 자리라도 마련해 주련만 그럴 수도 있지 않는냐는 말로 핏줄을 감쌌고 자네는 왜 그렇게 밖에 안되냐는 소리로 날 몰아 내었다. 핏줄 가지고 편가르기 하는 치사한 언쟁이 결혼 생활 24년 동안의 압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역시 남이었다............

 난 그 테두리 안에 발 들여 놓을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었구나.....

 필요하고 소용될 때 만 가족이었고 조금이라도 어긋나고 눈에 거슬리면 '생판 남' 이었다.

 옆에서 에비 편을 드는 딸아이 역시 생소한 남 같다는 생각이 들자 견딜 수 없는 배신감과 허탈함에 난  온몸의 땀구멍이 다 벌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쏟을 물기하나 가둘 수 없을 만큼 모든 생체리듬이 박살 난 것 같았다.

 지금까지 촘촘하게 홈질 해 온 내 삶이 너덜거리고 펄떡거리며 건너뛰기를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는 남편에게 시집 식구들에게 내 몸 안 아끼고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아홉 가지 선행이 한가지 미스를 포용하지는 못하는 시집식구들의 편협 된 잣대가 나를 형편없이 평가절하 시켰다.

 이해를 하자........

 내가 더 넓게 생각하자........

 시집식구라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게 아닌가............

 여기까지는 그래도 난 마음을 누그려뜨릴 수 있지만 남편에게로 생각이 옮아가자 또다시 울대가 비좁도록 치밀어 오르는 서운함으로 목 줄기가 뻣뻣해졌다.

 나를 위해서 내가 더 이상의 해명이나 변명이 소용없다는 걸 알았을 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최대의 승리는 '침묵'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또다시 잠을 빼앗아 버렸다.

 이럴 때면 난 음악에 미쳐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날 다스릴 수가 없다.

 남편의 숨소리마저도 강한 거부감이 들어서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폰을 꽂고 테잎을 집어넣었다.

 John Lennon의 'Imagine'..........

 이 노래는 John Lennon이 그의 두 번째 일본인 아내인 '요코'를 위해서 만든 노래이다.

 아내를 위해서 노래를 만든 남편도 있는데 그 까짓 거 아내 편 하나 들어준다고 역사가 바뀔 것도 아닌데 인색하기만 한 남편의 행동이 노래를 들을수록 서럽고 분한 생각이 든다.

 

 눈을 감았다.

 묘하게도 한켠에 밀쳐 두었던 과거가 서서히 감은 눈 안에 자리를 잡았다.

 인연을 비켜갈 수밖에 없었던 '그'가 이 시간에 왜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남자는 행복할 때 과거의 여자가 생각나고, 여자는 불행할 때 과거의 남자가 생각난다고 했는데 그러면 난 지금 불행한가...........

 '그'와 인연을 맺었다면 '그'도 팔을 밖으로 꺾지 못했을까.....

 모르겠다.

 '그'와는 팔 꺾기 게임을 해 보지 않았으니......

 그러나 '그'라면 아마 나를 위해서 안으로 팔을 굽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라면 팔을 수평으로 펴서 두 군데를 공평하게 다둑여 주었을 것 같다는 어이없는 공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와 남편을 저울대 위에 올려놓고 내 멋대로 눈금을 조절하고 있었다.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인색하게 굴면 나 역시도 당신 점수에 인색할 수밖에 없으니 자업자득인줄 알라................'고.

 

 자는 줄 알았던 남편이 거실로 나오면서 불을 켰다.

 "자네 지금 여기서 머 하는 짓이야?"

 아무리 화나도 거실로 보따리 싼 적 없던 내 행동에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 당신 점수 매기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아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