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서 아파트 뒷산을 찾았다.
괜시리 몸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긴것 같았다
몸이 편하면 마음이 불편해 진다는 걸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딸아이까지 교원 연수 받는다고 집을 떠나고 나니 갑자기 더 넓어진 것 같은 집안이 오히려 답답증을 불러왔다.
어제까지 기승을 부리던 날씨가 차츰 흐물거리며 나긋해졌다.
야산이지만 그래도 산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기에 주변에서 즐겨찾는 등산 코스였다.
하루 한번씩도 오르지 못하는 게으름의 극치를 누리고 있는 요즘 난 참 한심하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사태가 벌어져야 정신을 차릴지........
오후의 햇살이 제법 아늑하게 내려 앉았다.
양지 바른 곳에 때이른 봄나물이 미처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낙엽속에 숨어있다.
낙엽을 헤치고 손가락으로 몇개를 뜯었다.
오늘저녁 청국장에 비벼 넣으면 그래도 풋나물 내음이 조금은 배어 나리라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스쿠터에 거름을 실고 오는 어떤 이와 만났다.
헬멧을 눌러쓰고 마스크를 해서 얼굴의 윤곽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목소리에 힘이 든걸로 봐서
노(老)털은 아닌성 싶었다.
다시 비탈길을 되짚어 올라가는 이를 따라갔다.
이 산속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건 또다른 반가움이었다.
어떤 이도 제법 반가웠는지 두런두런 밭 얘기에 열을 올렸다
"밭이 산성화 되어서 비료 가지고는 택도 없니더"
"그럼 무얼 넣어야 중성이 됩니까?"
"똥도 넣어야 되고 음식쓰레기 썩은것도 좋고요...."
한 작물만 계속해서 땅에 심으면 땅을 다 배리니데이...
돌아가면서 작물을 바꿔줘야 땅이 삽니데이........
마치 내가 농사지을 요랑으로 이것저것 묻는 모양새가 되었고 어떤 이는 친절하고도 장황하게 강의를 했다.
재미 있었다.
강의가 재미 있었던게 아니고 코를 훌쩍거리며 열심히 상식을 쏟아내는 제스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거름을 밭에다가 힘겹게 쏟아붓고 있는 이에게 한마디 더 거들었다.
"뭘 좀 도와 드릴까요?"
농사 '농' 자도 모르는 주제에 주접을 떨었다.
"아이라요....고운손으로 하기엔 안 어울리니더......."
손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래도..도와 드리고 싶어서요......"
"하이코..........누가 보믄 우짜라고요......."
기겁을 하고 손사레를 친다.
하긴 누가보면 정다운 내외가 같이 농삿일 하는 걸로 비춰질수도 있겠다.
수고 하시라는 말 던지고 왔던길 되돌아 가는길에 씨눈만 달린 진달래를 발견했다.
가게를 꾸려 나갈때 매년 이맘때면 진달래 가지를 꺾어다가 한 겨울에도 철이른 꽃을 피워서 숱한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다.
어떤 손님은 만개한 진달래 앞에다가 나를 앉혀놓고 사진을 찍어 간 적이 있었는데 부쳐 준다던 사진은 지금까지 나에게 부쳐 오지 않았다
한껏 포즈를 취해 주었는데.......
자연보호의 취지에 어긋나지만 몇가지 꺾어 가지고 오면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혹시라도 사람들 눈에 뜨이면 '무식한 여자'로 이미지가 흐려질 것 같았다.
이젠 산에 가더라도 자연을 훼손하는 사람은 극히 찾아보기 힘들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졌는데도 불구하고 산은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는것 같았다.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사고가 자리를 잡은듯 해서 간만에 대하는 정부의 성공작이었다.
지금 꽂아 놓으면 구정때는 꽃을 볼수 있을것 같다.
실내온도가 높아서 빨리 만개하는데 비례해서 빨리 지기도 한다
이래서 花無十日紅이라고 했나...
질그릇 단지에다가 정수기 물을 받아서 밑둥치를 그으른 진달래 가지를 꽂아서 거실 창앞에 두었다
둔탁한 질그릇이 제법 운치가 있었다.
머지않아 연분홍 꽃이 흐드러지게 피리라.
봄이 또한 멀지 않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