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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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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의 외출


BY 蓮堂 2005-01-15

"너 이번에 안오면 쳐들어 간다... 너 이제 백수잖어"

2년을 잊고 살았던 여고 동창회의 총무와 회장이 며칠전 줄줄이 협박 전화를 해 왔다.

14일날의 정기총회를 앞두고 그동안 소식 끊겼던 친구들에게 일일이 경고장을 띄우는 중이란다

소문도 빠르다.

 

집을 나서면서 명단에 들어 있지 않았던 知人들에게 3차 배송을 했다.

"책 ....내셨나요?"

그동안 몇차례 드나들던 관계로 안면을 익힌 우체국 창구의 여직원이 하던 일 멈추고 묻는다.

대답 대신 웃었다.

그리곤 웃음끝에 작은 목소리로 '한귀퉁이 쬐금요..........'했다.

 

오랜만에 시외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솔린 냄새가 울컥 내장을 흔든다.

한시간을 편하게 가기는 애시당초 틀려 먹었다.

 

멀미의 전초전이 스물스물 목젖을 타고 기어 오른다.

곧 있음 복통을 수반한  울렁 거림이 올거고 씁쓰레한 된춤이 입안에 고이면서 두통과 식은땀이 전신을 적시리라

차라리 아픈게 낫다.

 

이럴땐 한숨 자고 나면 속이 가라 앉을텐데 잠은 쉬이 들지 않을것 같아서 가지고 간 책을 펼쳤다

길버트 키스 체스턴트의 추리소설'The innocence of father brown(브라운 신부의 동심)'.

 

지난주에 조카 녀석들 줄줄이 데리고 시립 도서관에 가서 빌려 온 좀 오래된 책이지만

가끔씩 머리도 식힐겸 난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작가 김성종님의 소설은 거의 다 읽었을 정도로 매력을 느꼈다.

때로는 무협지를, 작년에는 '퇴마록' 같은 환타지 소설을 몇질 훑은적이 있다.

 

쟝르를 선택 할때는 그날의 컨디션과 무관하지 않다.

기분 좋을때는 수필집을 기분이 꿀꿀 할때는 소설, 그리고 억수로 화가 날때는 무협지를 읽으면서 화를 삭히기도 한다.

 

온 정신을 몰아서 한곳에 묶고 싶고 무언가를 잊고 싶을때는 추리 소설을 읽는다.

예정된 쟝르는 아니지만 멀미를 잊고자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차창을 뚫듯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겨울빛이 따갑고 눈이 부셨다.

내창에 드리워져야 할 커텐이 앞좌석으로 밀려가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내앞으로 당겼다.

그런데 뒷꼭지가 반백은 넘었을 듯한 사내가 곧바로 당겨 갔다.

어라??

자기 커텐은 그사람 코앞에 주름선을 무시한체 아무렇게나 뒤틀린채로 묶여져 있었다.

 

아..모르고 있구나  이게 남의 커텐이라는걸........

한번 더 당기면 그때는 알아 차리고 미안해 할거다.

다시 살며시 잡아 당겼더니 왠걸 이번에는 신경질 적인 감정이 담긴 손 짓으로 확 잡아 당긴다.

조용히 마닥에 깔려 있던 감정의 그트머리가 슬슬 말려 올라갔다.

이걸 다시 잡아당겨? 말어?

 

짧은 시간의 갈등을 접고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앞뒤 가지런히 정리해서 설명하면 분명 미안해 할게 틀림없지만 컨디션도 그렇고 무시하기로 했다.
수긍하면 다행이지만 억지라도 부린다면 모처럼의 외출에 오물이 튈것 같았다.

 

후끈한 차내의 공기 탓인지 안에서 내다 본 바깥은 겨울 답지 않게 포근한듯 했다.

눈이 오지 않은 겨울은 왠지 넉넉해 뵈지 않는다.

밑둥이 잘리워 나간 나락의 뿌리사이로 춥지않은 날씨덕에 새파란 움이 트 있다.

오그라 붙은채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떡갈나무잎은 그 자리가 비워주고 내려 앉아야 할 자리임을 모르는 듯 했다.

저 잎이 뿌리로 돌아가야 하는 자연의 섭리를 외면하고 있다.

비단 미련은 인간만이 가지는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속이 매슥 거리자 글이 눈에 와 박히지 않고 자꾸만 겉돈다.

읽었던 글이 자꾸만 생소하게 느껴지면 책을 덮어야 한다.

방금 읽었던 글이 머릿속에 남는다.

 

범인 프랑보우를 쫓던 명탐정  봐랑땅의 독백이 기가 막힌다.

'상대가 무슨일을 저지를 것인지 알고 있을때는 먼저 앞질러 가는것이 가장 좋고,

상대가 무슨일을 저지르는가를 알고 싶을때는 뒤를 쫓아 가는 것이다'

외국작가들이 쓴 추리 소설은 그 결말을 추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들은 사건을 뒤집는,  말하자면 극의 반전을 꾀하는 그 수법은  내 머리로는 가늠이 안된다.

 

햇살은 여전이 따갑게 전신을 훑는다.

이 햇살을 피하고 싶은데...

문득 통로 건너편에 비어 있는 자리가 눈에 띄었다.

백을 챙기면서 반백의 뒷꼭지에 대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속으로

'덕분에 아침햇살 잘 쬐고 논두렁 밭두렁 구경 잘 했심더..이젠 좋은 자리로 갑니다"

 

햇살을 피해온 자리는 서늘했지만 반백의 그 뒷꼭지하고 시비가 일지 않아서 맘이 편했다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프고 땀구멍에서 비질비질 땀이 솟는것 같았다.

 

친구들과의 뜨거운 포옹

하얀 칼라의 단발머리의 소녀들은 간곳도 없고 희끗희끗 서리내린 머리카락을 가지고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중년의 친구들의 대화 방향이 어느듯 늙은이 티를 낸다.

얼마전 사위를 본 친구는 사위가 이쁘다고 했다가 쥐어 박혔다.

징그러운 소리좀 작작하라고 했지만 이젠 사위가 이쁘고 손주가 귀여운 나이임은 부인할수 없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친구덕에 마음껏 떠들수 있었고 우리가 좋아했던 통키타 세대의 그 음악을 틀어놓고 옛날 얘기에 어둠이 찾아드는 것도 몰랐다.

우울한 회색빛 하늘은 언제쯤 눈을 퍼부을지 모두들 창속에 담겨져 있는 하늘을 보며 원망을 했다.

아침 일기예보 대로라면 지금쯤 눈발이라도 날려서 암시를 주련만 하늘은 멀뚱거리고 있었다.

눈이 올거라는 기상 케스터의 깜찍한 웃음이 평소보다 맑아 보였다.

눈소식을 물어다 준 그녀가 한결 이뻐보인 플러스 알파였다.

차츰 그녀의 예보가 틀림으로 해서 덤으로 준 점수를 빼앗고 싶어졌다.

중고등학교 6년과 그 맥을 놓지않고 지난 15년간의 희로애락 가운데서도 잃지 않았던 그 끈끈한 정에 발목 잡혀 있다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풀려(?) 났다.

'이젠 집에 가도 좋다..........'로 귀가를 허락 받았다

 

마지막 밤기차로 돌아오는 내 머릿속은 이상하게 비어 있었다.

주섬 주섬 주워 담은 얘기와 기억들이 깡그리 달아나 버렸다.

그러나 엑기스로 남아있는 한방울의 그 찬란한 색깔은 '無色'이었다.

 

無色은 온갖 색깔을 다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넉넉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