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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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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괜찮아


BY 蓮堂 2004-12-27

딸아이가 지난 5년동안(1년 휴학기간 포함) 몸 담았던 자취집을 내어주게 되었다
임용고사도 치루었고 방학도 되었고 그래서 더 머물 필요가 없아서 보따리를 챙겨와야 했다.
비록 아이들 소꿉놀이 같았던 살림살이지만 승용차 가지고는 어림이 없다고 해서 카니발을 빌렸다

지난 15일 개통되었던 중부내륙 고속도를 처음으로 달렸다.
참으로 오래살고 볼일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얘기하는것 같았다.

산허리를 무 자르듯이 쑥덕 자르고  두텁고 거친 산에다가 구멍을 내고 굴을 뚫었다.
건축공학 토목공학엔 언저리도 못간 무식쟁이 생각으로는 산 허리를 자르는 건 톱으로 동강내면 될것 같았고 산속에 구멍은 직경넓은 송곳으로 후벼파면 될것 같았다.
그래서 시멘트 덕지덕지 바르고 천정에다가 30촉 자리 전구알 듬선듬성 박으면 쉽게 공사가 끝날일 같은데 공사기간이 무려 8년이란 세월을 잡아 먹었단다.

시멘트 몇트럭에다가 철근 두어차만 쏟아부으면 돈도 억시기 안들것 같았지만
공시비만 2조 7천억여원이란 천문학적인 숫자에 그 공사의 규모를 알것 같았다.
김천 <--->여주간 총연장 152km라는것도 만만찮은 거리였다.
 
새로난 도로는 규정속도 110km라는데도 매력이 있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중 이 속도를 낼수 있는곳은 중부 고속도로 뿐이었지만 그 규정대로 달리는 사람 그리 많지 않다
초과해서 돈다발 나라에 들이민것도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핸들만 잡으면 비행기로 착각하는 남편 때문에 옆에 앉아서 매번 눈에 불을 켜서 주지시키는 것도 못할 노릇이었다.

아직 도로에 별다른 흠집나지 않은 말끔한 길을 달리는 기분도 날씨 만큼이나 쾌청했다.
차창을 스치는 바깥 바람도 그리 차지 않았다.
어느때 부터인가 제철을 잃어버린 겨울이 개나리를 피우고 땅바닥에 달라붙은 냉이가 푸른빛을 띄웠다.

농부들의 시름은 갈수록 커졌다.
철을 알아야 농사를 짓는데 철이 철들지 않았으니 내년 농사는 장담을 못한다.
冬死해야 마땅한 각종 병충해가 죽지않고 겨우내내 기승을 부리면 농사에 치명타를 가한다고 한다.

겨울장사를 다 접었다고 울상을 짓는 상인들의 시름이 메스컴에 보도될때마다 더 추운 겨울을 피부로 느껴야 하는게 우리 서민들의 동병상련이다

딸아이가 챙겨놓은 살림을 차가 터지도록 쑤셔박고 비틀걸음으로 오는데 문제가 생겼다.
컴퓨터는 짐속에 못 넣고 사람이 안고 타야 했다.
최신형 모니터라서 얇고 가벼웠기 때문에 얕보고 내 무릎위에 올려놓고 오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아무리 가벼워도 기계는 기계였다.
차츰 엉덩이가 쑤시고 무릎이 저려 오는데 정말 고문이 따로 없었다.

문득  몇년전에 독립기념관에서 본 일본넘들이 우리 독립군에게 가했던 고문형틀이 생각났다.
아직도 잊혀지지않고 머릿속에 남아있는건 사람 키만한 나무틀(통)에 사람을 똑바로 세워놓고 그대로 박제시킨거였다 

옴싹달싹을 못한채 소리없이 죽어나가야 했던 그 몸서리쳐지는 기구가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모니터가 엉덩이와 무릎을 눌렀고 두발은 짐속에 묻혀서 꼼짝을 할수가 없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웠다.
그 고문형틀 속에 갇힌 기분이라고 하면 엄살로 들릴지는 몰라도
잊고 살았던 멀미까지 겹쳐서 2중3중고를 겪었는데도 이 미련스러운 母情은 내색을 하지 못했다.

앞좌석에 앉은 딸아이는 가끔씩 돌아보며 괜찮으냐고 걱정스러이 물었지만 그럴때마다
'난 괜찮다' 고 했다.
제법 입자위 밀어내며 웃기까지 한 그 여유가 신기했다.
딸아이가 고통 받느니 내가 받는게 낫다는 그 힘 하나로 버틴것 같았다.

출발한지 거의 두시간이 지날 무렵부터 난 서서히 무너졌다.
제발 한번만 더 물어주길 바랬다.
그러면 마지못해 넘겨 줄건데 이 녀석은 몇번 인사치레로 묻더니 잠이 든것 같았다.
백미러로 힐끔거리던 남편의 눈하고 딱 마주쳤다.
난 드디어 죽는 시늉을 했다.

남편이 총대를 맸다.
"효원아.......아무래도 니 엄마가 컴퓨터 말아 먹을 인상이다...니가 들어라 이제"
그때서야 딸아이가 눈치를 알아채고는 소스라치게 놀랜다.
"엄마....세상에.....세상에.........."
딸아이는 모니터를 들어 보더니 혀를 찼다.
"우리엄마가 미련한건지 대단한건지 몰라도 인내심 알아줘야 해요"

저린 무릎 문지르며 속으로 투덜 거렸다.
' 야  임마.. 니도 시집 가서 자식 낳아봐라..왜 에미가 미련하고 대단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