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베란다 하수구가 막혔는지 말썽을 곧잘 부렸다.
아무 생각 없이 세탁기를 돌리다보면 굼실굼실 기어오르는 땟 국물이 온 베란다에 넘쳐흘러서 지저분하기가 말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아파트 관리 사무실에 연락을 했더니 한시간이 지난 후에 두 사람이 왔다.
한사람은 앳디게 생긴 햇 총각 같았고 또 한사람은 세상물정에 푹 절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큼직한 용구(압력 분사기)를 들고 썩 들어서는 폼이 믿음직스러웠는데........
세탁기를 밀어내고 하수구안을 살피던 푹 절여진 사람(주임)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아주머이요, 이거 우리 힘으로는 안 되니더......."
손을 탁탁 털더니 거두절미하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다.
"왜 안되는데요.?..."
마치 잡은고기 놓친 표정으로 주임을 바라보며 난 사정하는 눈빛을 보였다.
"이거 뚫을려고 하다보면 큰일 나니데이."
"무슨 큰일요?"
앞 동가리 다 잘라먹고 무조건 안 된다는 소리로 결론부터 내렸다.
"이거 뚫을려고 압력분사기 무리하게 들이대다보면 하수구 관이 다 터지니데이"
속된말로 뻥을 치는지 우선 겁부터 잔뜩 먹여 놓는다.
하수구관이 터진다고라??
이쯤에서는 물러 설 줄 알고 하수구관이 터지면 공사비가 수천만원이라는 둥 그거 아주무이가 물어낼 자신 있냐는둥 오만 소리 다 쏟아 놓는다.
무슨넘의 베란다 하수구 하나 뚫는데 천문학적인 숫자까지 들먹여 가면서 기를 죽이는지 슬며시 부아가 났다.
"아저씨.....전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무슨 이해가 안가요?"
"이 하수구 뚫는데 제가 알기로는 3 kg의 압력만 주입하면 되는걸로 아는데요 그것도 무립니까?"
압력분사기의 사용영역까지 꿰고 있는 내가 만만치 않다고 느꼈는지 아뭇소리가 없다.
"작년에도 이런 현상이 생겨서 뚫었는데도 하수도관은 멀쩡하던데요"
"뚫어요?.......누가요?"
"누군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관리사무소에서 나온 사람인 건 맞는데요"
이 주임이라는 사람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독백처럼 내 뱉는다.
"그놈 정신나간 놈이네"
결국은 이 고집불통의 주임은 뻣발스럽게 버티다가 그냥 가버렸다
괜스레 속이 자글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수구를 뚫지 못한데서 오는 분노가 아니고 시도도 안 해보고 '불가판정'에만 급급했던 주임한테 뭐라고 한마디는 던져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위험을 감수해야 된다는 부분은 이해를 하겠지만
작년에는 가능했던게 올해는 불가능하다는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한참이 지난 뒤에 다시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문제의 그 주임을 바꾸라고 했다.
관동성명을 착실하게 대고있는 그 주임의 말을 질긴(?) 인내심으로 다 듣고 난 뒤에 한마디
정중하게 던졌다.
"그런데요..머 하나 여쭈어 볼려고요"
"옙. 말씀하시이소"
이때까지만 해도 참 부드러웠다.
"거기 관리실에서는 정신 나간놈도 직원으로 채용합니까?"
"머라고요?"
갑자기 톤이 높아지면서 숨소리가 고르지 못하다.
"여긴, 105동 xxx호 인데요....작년에 하수구 봐준 사람이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해서 그게 가능한가 싶어서 물어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