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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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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내딸은 칠삭둥이??


BY 蓮堂 2004-11-30

 

내딸은 칠삭동이다.

일곱달만에 태어나서 칠삭동이가 아니고 결혼한지 일곱달만에 세상구경을 한 ,

대책없는 부모에 의해서 속도위반에 걸린 '속순(速順)'이다.

 

약혼을 하고 어영부영 만나다 보니 혈기왕성한 남편의 꼬드김에 난 뼈없이 무너져 버렸고

깡단과 자존심으로 무장되었던 내 이미지는 결혼도 하기전에 친정식구들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임신이라는걸 알고는 소위 말하는 '중절수술'을 할려고 올케하고 의논을 했더니 기겁을 한다.

첫아이 잘못 건드려 놓으면 평생 불임이 될수도 있으니 경솔하고 섣부르게 일 저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

 

결혼도 하기전에 아이부터 가져버린 이 답답한 화상은 뱃속의 생명보다도 내 이미지에 먹칠할게 더 두려워서 자연유산이라도 되기를 빌고 또 빌었다.

남편한테 의논했더니 '지우라.........'고 했다.

(이부분은 아직도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절대로 그런말 한적 없다고.)

 

임신 4개월의 몸으로 식장에 들어서는데 멀미아닌 멀미로 내 정신이 아니었다.

구토와 어지럼증으로 예식을 어떻게 치루었는지  기억에 남는게 없다.

 

결혼직후 임신사실이 드러났을때 좋아서 어쩔줄 몰라 하시는 시어른들과 친지들을 뵈었을때

등어리 식은땀이 축축이 배이는걸 느꼈다.

민망해서 고개도 들지못하는 며느리 방 가운데 앉혀놓고 공치사 하시는데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남편은 집안의 종손이었는데 내 실수로 돌이킬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결국은 결혼한지 일곱달만에 18시간 진통끝에 딸아이를 낳았을때 난 땅이 꺼지는것 같았다

이 케케묵은 곰팡이 슨 집에 아들을 낳아 드려야 했는데 딸이라니......

그 민망하고 무안한거 다 감수하고 뱃속에 키워 놓았는데.......

 

2.4kg의 딸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집으로 데려 왔다.

섭섭하고, 속상하고, 긴시간 진통한게 억울하고......

 

그러나 손녀를 안고 입이 찢어져라 반기시는 시어른들에게 그저 고맙고 죄스러웠다.

그 반면에 난 딸아이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

미웠다.

젖도 주기 싫어서 퉁퉁불어 터진 젖을 그냥 짜서 버렸다.

시어머님이 아시곤 노발대발 하셨다.

'무신 에미가 젖을 아끼냐'..........고

 

젖을 말리려고 정성스럽게 끓여주는 미역국도 먹는둥 마는둥 했다.

 

아들에 대한 환상은 거의 병적으로 달라 붙어서 딸아이를 더욱 홀대하게 만들었다.

울어도 냉큼 안아주지도 않았고, 배고파서 빈입을 훑으며 젖을 찾아도 그냥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우리속에 넣어둔 원숭이 골리듯 니가 얼마나 버티나 두고보자 하는 독한 맘이 들었다.

 

기저귀를 갈아 줄때마다 혹시라도 '고추'로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얼토당토 않은 기적에 번번이 기대를 걸어 보기도 했다.

 

그 기대가 여지없이 깨어진다는거 알지만 기적을  바라는 헛된 망상은 딸아이가 백일을 넘기고 부터 현실로 받아들이는 진짜 엄마로 아이를 보듬어 안았다.

 

아이가 불쌍하고 내 욕심으로 아이를 내친게 너무 가슴 아파서 딸아이를 껴안고 울고 또울었다.

이것도 에미라고 가슴팍을 찾아드는 딸아이에게 난 씻을수 없는 죄인이었다.

 

딸아이를 대할때 마다 진드기 같이 달라붙는 아이에 대한 미안하고 면목없는 맘은 옅어지질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독할수 있었는지 지금생각해도 이해가 안가는 미스테리다.

(첫딸에게 지독해야 둘째는 아들 본다는 속설이 있었다고 하는데....둘째는 아들이었다)

 

딸아이가 중학교 갈 무렵에 던져온 질문이 있었다.

"엄마,.......아기는 몇달만에 나아요?"

"그야 열달이지.........."

"그럼 엄마아빠 결혼식은 언제 하셨는데요?"

"4월달이제......"

"그런데 왜 제 생일은 11월달이예요?"

 

아차차차차............

 

난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상세하게 설명을 하기엔 아이가 어리다고 생각했고 또 솔직하게 얘기할수도 없었다.

왠지 부모를 부도덕하게 볼것 같은 나름대로의 불안감이 나자신을 비겁하게 만들었다.

 

올해 스물하고도 네살이 된 예비교사....

불우하고 그늘진 구석만 찾아서 온몸을 던지는 딸아이다.

 

내년이면 고사리들 손잡고 교단에 서서 의엿한 사회인으로 출발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목숨같고 금쪽같은 딸아이를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처자식 대하듯 내 품에서 밀어낸 그 기억이 언제쯤이면 사그라들지....... 

 

딸아이는 처음부터 여느 엄마처럼 지를 지독히도 사랑했는줄 안다.

내 비리는 영원히 묻어 버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