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7일........
그리곤 그 뒤는 없었다......나의 흔적이.......
나는 분명 여기 있는데 내가 딛고 온 발자국이 달아나 버렸다.
23년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온 일기를 겸한 가계부의 시계가 멈추어 있었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흔적이......
분명히 내가 부러뜨린 시계추였건만 난 두리번 거리며 찾고 있었다.
없을줄 뻔히 알면서 난 허무하고 착잡한 맘으로 그날 이후의 나를 발견하려고 몸부림쳤다.
듬성듬성 기억의 자투리가 손끝에 잡혀 왔건만 꿰매서 아귀 맞출 자신이 없었다.
발갛게 녹이 슨 행적들이 제자리에 박힐수 없는 삐걱거림 때문에 난 포기해야 했다.
난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떼밀리고 휩쓸릴까봐 실오라기 한올이라도 잡을려고 손끝에 힘주며 그렇게 살았는데
어이없는 일로 느슨하게 온몸의 힘이 빠져 나가던날 난 주저 앉아 버렸다.
'이시간 이후로 난 나를 버리련다.
철저하게 이방인 행세를 하며 그렇게 살련다.
언젠가 내가 나를 다시 찾았을때 난 또다시 메릴 스트립을 닮아 갈 것이다.'
난 그렇게 입 앙 다물고 석달여 동안 침묵해야 했다.
난 가계부를 쓸때마다 항상 생각하는게 있었다.
미국 전역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메릴 스트립을 모델로 삼고 나를 대입 시켰었다.
나도 언젠가는, 아니 내가 죽은뒤에 내 아이들이 내 일기장을 들춰보며
나를 돌이켜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맘으로 한치의 거짓도 없이 빼곡이 기록했다.
비록 발가벗겨져서 알몸이 드러나는 일들이 있다고 해도 난 당당하게 내 삶을 들려주고 싶었는데
언제 부터인가 나의 시계는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나의 삶에 새파란 비수가 꽂히던 날부터 나의 흔적은 그대로 멈추어 버려야 했고
더이상의 흔적은 훗날 나의 상채기로 남을게 두려워서 난 비겁해지기로 했다.
돌이키고 싫었던 기억은 그대로 묻어 버리는게 오히려 깨끗하고 떳떳할것 같았다.
헤집어 보면 정말 별것도 아니었던게 별것으로 다가와서 내 앞을 가로 막는다면 난 후회를 할것 같았다
그래서 석달여 동안 난 한번도 가계부를 펼치지도 않았다.
수입이나 지출의 명세서도 그대로 백지인 상태로 내흔적은 동강난 상태로 방치 되어 있었다.
기록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던 공백기였기에 돌이켜 보면 약간의 후회는 따랐다.
좋은일만 기록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로 스스로에게 당부를 했건만
난 나 스스로에게 등을 돌리고 말았다.
내 비밀함에 보관되어 있는 22권의 가계부를 어떻게 할까 고민중이다.
더이상 흔적을 만들지 않는다면 저 22권의 역사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태워 버릴까.
아니면 찢어서 물위로 떠 내려 보낼까.
그냥 폐지함에 쑤셔 박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