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뵙고온 친정어머니의 초췌한 모습에 자꾸만 맘이 쓰였다.
쥐면 한움큼 밖에 안될 것 같은 어머님의 반으로 접힌 허리가 내내 내 눈자위를 짓 무르게 했고, 불면 그대로 공중으로 포르르 날아 가버릴것 같은 깃털같은 엄마의 작은 몸이 자꾸 눈에 밣혔다
"엄마,....아침은?"
수화기를 들자마자 모든 안부인사를 총 망라한 이 짧은 인사는 굳이 답을 듣고자 한 궁금증이 아니었는데 곧이어 토해내는 어머님의 한숨에 왠지 불길한 감이 잡혔다.
"엄마 왜그러는데?.......무슨일이 있어?"
좀처런 맘을 열고 자식에게 속내 드러내시는 엄마가 아니기에 내 더듬이는 예민하게 움직였다.
"나 이러다가 아무래도 니 아부지 보다 먼저 죽을것 같다"
순간 '쿵' 하고 가슴이 통째로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왜?..응??...왜그러는데........"
짐작할수 있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구태여 다잡아 묻는건 내가 짐작한 답이 아니길 바라는 맘이 더 앞섰기 때문이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님의 심기는 나날이 더 심하게 가파르게 곤두 서 있있다.
원래부터 유순한 분이 아니셨지만 연세가 들고 몸이 불편하시면 그래도 뭉툭하게 깎일줄 알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뾰죽한 성격의 모서리가 점점 날을 세우는거였다.
그 옆에서 어머니는 항상 말없이 그림자 처럼 조용히 움직여 주셨고
그 만만함에 익숙해 지신 아버님은 마치 당신 부속물처럼 엄마를 마구 손안에 넣고 좌지우지 하셨다.
까다로우신 식성과 고집 그리고 여든두해를 악세사리 같이 지니고 계셨던 자존심,
자리 보존하시면서도 결코 마누라나 아들 눈치 볼거 없이 당신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턱없는 주장 언성 높히시며 여전히 가족위에 군림 하셨다.
당신 손으로, 당신 힘으로 하실수 있는 일은 겨우 왼손으로 식사하시는것 뿐이었다
그런데도 온통 당신 혼자만이 할수 있다는 그 깊디 깊은 오기와 자만이 엄마를 더 힘들게 하셨다
오래 못 사실것 같은 예감에 마치 임종이라도 볼듯이 여러 형제들이 득달같이 달려온 날들이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다.
새벽전화 심야전화 벨 소리에 가슴 졸이는 일 잊고 산지도 또한 여러해 전이었다.
전에 없이 털어 놓는 엄마의 긴푸념과 넋두리가 예삿일은 아니었다.
어지간해서는 자식에게 속아픈 소리, 귀찮은 소리, 어슬픈 소리 하시는 분이 아니었기에
내 머리끝은 서서히 위로 치솟고 있었다.
엄마의 하소연에 난 더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 이젠 아부지 돌아 가시라고 해요..제발~~~~~~"
열을 받아 가시가 돋힌 내말에 엄마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더니 가라앉힌 목소리에 울음을 삼키시고는,
"그래도 너 그러는게 아니다....어째,자식 입으로....."
애지중지하던 딸의 입에서 뱉어놓은 말이라고 생각하시기엔 너무 서운하고 섭섭하신가 부다.
그러나, 난 나의 판단이 흐려져 있는지는 몰라도
아버지가 안계시면 여든을 바라 보시는 고단한 엄마의 삶도 좀 편해 지실것 같고
어느하루도 편한잠 자지 못하시는 오라버님 내외의 근심도 덜것 같았다.
불효라도 좋다.
얼마남지 않은 엄마의 남은 삶을 아버지로부터 탈출 시켜 드리고 싶었다.
시어머니수발, 남편 수발에 엄마의 삶은 깡그리 강탈(?) 당하시고 사신게 같은 여자로서
너무 허무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랬다...........
그리고 난 수화기를 든채로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내가,,,,,,,내가,,,,,,,,,아버지를 미워 하다니.....
나를 어떻게 키우신 아버지신데...........
그러나, 난,...그랬다...
내가 할수 있는 말은 그 말뿐인 현실이 너무 암담했다.
지극정성인 오라버님 내외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아버님 병수발에 체력에 한계를 느끼신 어머님이 너무 가엽고 안타까워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막되어먹은 불효 막심한 소리 뿐이었다.
딸이기에 이런 소리도 할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잣대를 그대로 부러뜨리고 싶었다.
더 좋은 소리, 더 힘이 되는 소리, 더 위로가 되는 소리 얼마든지 할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난 마치 남의 제삿상에 돌 던지는 놀부 심사로 그렇게 엄마를 아프게 했다.
이게 엄마를 위한 소리는 결코 아닌줄 알면서도 아직도 평생 아버님으로 인한 그 고된삶에
반기를 들줄 모르는 엄마의 답답한 '순애보'에 난 질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같이 늙어 가면서 그래도 등 기대고 아픈살 만져주고 가려운데 긁어주는 동반자로 60년을 해로 하셨으면 조금은 위로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살아도 한이 많고 억울하실텐데....
연로하셔서 판단력 흐리고 이성도 거의 상실한 힘없는 노인에 불과 하신 줄 알면서도
난, 나혼자서 아버지에게 턱없는 요구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쪽 같으셨고, 불콸 같으셨고,
그러나 속정이 유난히 깊으셔서 오히려 엄마보다도 더 살가우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님을 뵈면 난 항상 눈물이 났었다..... 전에는......
그런데 이젠 화부터 난다......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마주 뵙기가 싫었다.
그리곤 돌아서 나올때면 항상 목젖이 아프도록 기어 올라오는 슬픔과
눈물샘이 미어 터지도록 일렁거리는 눈물 감추려고 하늘을 쳐다보곤했다
살아 계셔도 살아있는 사람의 몫을 티끌 만큼도 느끼지 못하시고
스스로를 당신안에 가두고는 모두를 당신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래시는 그 이기심에 난 화가 났다.
거부의 몸짓이나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하고 고스란히 아버님이 누르는 리모콘에
기계 같이 움직여 주는 오라버니에게 난 막 화를 냈다.
"오빠.......이젠 그만 오빠 뜻대로 하세요..."
예순을 바라보는 오라버니의 흰 머리칼을 보면서 난 맘에도 없는 화를 냈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정작 아버님 앞에 가서는 바른소리나 당부의 말씀, 그리고 애원의 말씀 한마디도 드리지 못한 채 목을 끌어안고 얼굴 부비는 비겁한 딸이면서 난 오빠에게 엄마에게 짐짓 화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이젠,
그만 돌아가시라고 뱉어놓은 내말이 훗날 내 가슴을 찌르는 비수가 될지라도
난 그 말 밖엔 할수가 없었다......
그 말밖엔........
난,
지금도 울고 있다..........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