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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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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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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왜 건드려?


BY 蓮堂 2004-06-29

공무원 생활 6년 동안에 참으로 많은 에피소드가 생각나지만 그중에서도 잊혀지지 않은 사건이 있어서 가끔씩 혼자 웃곤 했다. 시대의 흐름에 밀려 결혼과 동시에 사표를 냈지만 살아가면서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때이기도 하다.
민원창구에서 대민업무가 주로 내가 맡아 해야 하는 일이지만 관공서간의 긴밀한 협조도 아울러 병행해야 했는데 가장 많이 부딪히는 게 경찰관이었다.
뗄 수 없는 함수관계에 엮이다 보면 종종 얼굴 붉히며 불편할 때가 더러 있었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한발 물러서야 하는 게 우리네 입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목에 힘을 주는 권력 기관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 서류 때문에 민원창구가 한창 붐비는 느지막한 겨울 끝 무렵이었다. 그 때만 해도 손바닥만한 시골이지만 골골이 아이들이 박혀 살던 시절이어서 입학생들이 적지 않아 그 무렵이면 늘 야근까지 해야 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지금은 모든 업무가 기계화 되어서 서류발급은 누워 떡먹기지만 일일이 손으로 썼던 원시적인 방법밖에 없었던 때라 하루 종일 한글도 아닌 한문으로 손가락을 혹사 시키고 나면 팔에 마비증상이 오는 것 같이 아팠었다.
그 바쁜 시간에 지서 사환이 종이쪽지 한 장 달랑 던져 놓고 가면서 퇴근시간 전까지 해 놓으라는 차석의 명령을 전달하고 갔다. 사환도 지서 물을 먹은 탓인지 목이 뻣뻣해서 눈에 거슬리던 참이었다.
훑어보니 서른 명은 족히 됨직한 지역 유지와 기관장들에 대한 신상, 즉 가족관계와 전과 사실 그리고 그 밖의 특이사실을 조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기들이 와서 해야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바쁜 사람을 위한 배려하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서랍 속에 밀어놓고 하던 일만 하고 있는데 늑대 - 음흉해서 내가 붙인 차석의 별명 - 에게서 전화가 왔다.
“ 난데, 아까 김 군이 갖다 준 것 봤쟈? 꾸물거리지 말고 빨랑 해놔.”
매번 이런 식이다. 명령 내지는 반 으름장 식으로 사람의 오장을 뒤집어 놓았다.
“지금은 바빠요. 이따가 해 놓으면 찾아 가세요”
배일이 틀려서 쏘아 붙이고 나니 늑대에게서 연거푸 전화가 걸려왔다.
“ 다 되어 가나?”---------------------“아뇨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얼마나 기다리래?”-------------------“나도 몰라요. 지금 바빠서.”
“나 지금 본서에서 깨지고 있는데.”---------------“기다려요?
“ 정말 이러기야?”-------------------“그렇게 바쁘면 직접 와서 해 가세요.”
조금 있다니까 늑대가 인상을 그으면서 들어오더니 곧장 높으신 어른 방으로 직행했다.  웬 지 기분이 찜찜했다.
아니나 다를까 높으신 어른의 부름에 사태를 짐작하고 갔더니 늑대가 득의양양하게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느물거리며 날 쳐다보았다.
어르신의 손에는 ‘긴급’이라는 붉은 글씨의 공문서가 들려 있었다.
“띤 것 다 미루고 이것부터 해 드리지 왜 그래? 엉? 관공서끼리 이렇게 협조가 안돼서 되겠어?”
언성을 높이며 질책을 하는데  눈물이 왈칵 나왔다. 저 비겁한 늑대가 무슨 말로 꼬아 바쳤길래 사람을 이렇게 무참하게 만드는지 끓는 속에선 김이 올랐다.
정식으로 공문서 요청하면 버티거나 미룰 재간이 없다.
서둘러서 서류 정리해주고 와신상담 복수할 궁리를 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 늑대는 아까와는 생판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아이구,,, 미안하고 고맙고 수고 했어. 그런데 춥고 배 고프쟈?”
“그럼 이 시간에 덥고 배부르게 생겼어요?”
끓는 속이 그때까지 김을 내고 있는데 식을 리가 있나?‘
“열 달 내내 배부르게 해 주까?”
뭐라? 이건 요즘 같으면 성 희롱 죄에 속하는 중대 범죄지만 시대를 잘 타고 난 덕분에 늑대의 범죄는 성립이 되지 않았다.
순간 내 구두 뒤축이 늑대의 발등을 사정없이 찍어 내렸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면서 스스로 발등 찍을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지 얼마든지 시켜먹고 내 앞으로 달아놔”
뭐든지? 얼마든지? 뉘앙스가 묘했지만 짧은 내 입으로 자장면 한 그릇이면 족한데... 머리를 굴렸다.
순간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사무실에는 그때가지 퇴근 안한 직원들이 대여섯 명이 남아 있었다. 바로 이거다!
“춥고 배고픈 분 저녁 주문 받습니다. 될 수 있으면 비싸고 좋은 걸로 주문하세요.”
직원들은 웬 떡이냐 싶어 다투어 비싼 걸 주문을 하는데 곱빼기로 양을 늘이고 소주와 배갈도 곁들였다.
중국집에 연락을 했더니 입이 귀밑에 걸린 진 서방이 음식을 좍 펴놓았다.
“돈은 지서 차석님에게 받으세요.”
히야 맛이 그만이었다. 경찰 등친 맛이 어떤지는 먹어봐야 안다.
“오래 살다보니 경찰이 삐끼 먹는 건 봐도 경찰을 삐기 먹는 놈은 첨 봤다.”
김 주사의 너스레에 박장대소를 하고 있는데 늑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게 무신 소리야 웬 음식값이 이키 많아?”
“아유, 울프님, 뭐든지 시켜 먹으라고 해서 이건저것 시켰더니 너무 많아서 지금 직원들과 배 터지게 회식하고 있어요. 혼자선 도저히 다 못 먹겠더라고요.”
늑대의 앓는 소리가 전화기 밖까지 새어 나왔다.
이것 가지고는 안 되지. 몇 푼 된다꼬.
식사를 끝내고 샛별다방에다가 비싼 차 -아마 인삼차였지 싶다 -를 주문했다.
역시나 늑대의 두 번째 전화를 받았다.
“이건 또 뭐야?”
“입가심요.”
“이젠 더 안 되야.”
거칠게 전화기 내려놓는 소리에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해소 되는 것 같았다.
후후후 이젠 더 줘도 못 먹는다.
그날 음식값 차 값 솔찬히 깨 졌을 거다.
그러니까 왜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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