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여름.
밤 11시가 지나서 행인들의 발길이 잦아들고 상점의 불빛이하나 둘 사그라질 무렵에
가게를 정리하고 문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밖에서 자지러지는듯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귀를 잡아 당겼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빼고 내다보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서로 엉겨 붙어서 바닥을 쓸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여자가 일방적으로 맞고 있다고 하는게 옳았다
가슴과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배꼽티에,국부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짧은 핫팬티
산발한 노란 머리는 우악스러운 남자손에서 뽑혀질것 같았다.
신발은 달아났고 다리는 여기저기 피가 엉겨 붙어있었다.
아마 어디선가 전초전을 벌이다가 온것 같았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자의 뺨을 사정없이 유린하고 있는 그 남자는
시뻘겋게 핏발선 두눈에 살기마저 띄우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는 안그래도 더워서 숨막히는 날씨에 가미를 하고 있었고...
주고 받는 악다귀를 들어보니 동거하는 사이 같았다.
부부(?)싸움에 끼어 들어야 하나?????
잠시 혼돈이 와서 머리 정리가 안되는터에
그 여자의 구조 요청이 또한번 햇갈리게 했다.
"아줌마아...저좀 살려 주세요.....
경찰에 신고좀 해 주세요...제발...저 이사람 몰라요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맞고 있으니 제발....아줌마........"
피를 토할것 같은 절규에 나도 모르게 전화기에 손이 갔다.
그러자 뒷통수를 치는 벼락 같은 욕지거리에 온 몸이 오그라 붙는것 같았다.
"x발....누구든지 신고만 해봐라.....
그날로 홀애비 과부 만들팅께..........에이 X발 x 겉은 것들....."
두 귀를 씻고 싶은 모욕감에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있었지만
내 손은 전화기에서 멀어졌다.
남편 홀애비 만들수가 없어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자 그 남자는 안갈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를 둘러매다시피 하면서 어디론가 휘적거리며 사라졌다.
어느누구도 나서서 여자를 구할생각도 안하고 방관자 노릇만 착실히 하고 있는게
더운날씨에 더 불을 지피는것 같이 화가 났다.
건장한 넘도 더러 있두만.....
혹시 부부를 가장한 인신 매매범은 아닐까,
정말 모르는 사인데 여자를 폭행할려는 파렴치는 아닐까
신고 했어야 하는데......
나 자신의 안위가 걱정되어서 딸같은 애의 신세가 망쳐지는것을 그냥
멀거니 구경만 할수 밖에 없었던 나 자신의 비겁함에 낯이 뜨거워졌다.
그 일로 며칠동안 죄아닌 죄책감에
또래의 애들만 보면 나도 모르게 외면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두 남녀가 다정스럽게 팔짱끼고 아이스크림을 서로 입에 넣어주며
희희락락하는게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내 눈을 의심했다.
두눈에 핏발 세우던,
살려달라고 절규를 하던............그 철부지 커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