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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네북이가?


BY 蓮堂 2004-06-29

?  


내가 알고 있는 동네 북이란,
이유도 이유 같지 않은 일로 여기 저기서 툭 하면 두들겨 맞는다는 뜻 같은데....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고보니
실낱같은 사건만 생겨도 보이지 않는 화살 세례를 받아야 했다.
때론 약이 되고 피가 되는 것도 있지만 참으로 억울한 일도 감당해야 했다.

아주 오래전에,
둘째 작은 집에 새 동서가 들어왔다.
시집에서의 첫밤을 지내고 아침에 시어른들게 문안 인사를 드릴때였다.
대청 마루에서 찻상을 앞에놓고 인사를 받으려고 집안 어른들이 죽 앉아 계셨다.
(소위 말하는 집안의 토종 어른들.......)
곰팡이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어른들이라서 나 부터도 주눅이 들 지경이었다.

그런데,
새 동서의 머리가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뒷머리가 엉망으로 구겨진채로
인사를 드리는 거였다.
내가 봐도 민망할 지경이었는데 미처 깨우쳐 주지 못한 상태로 인사를 드리고 있을때
시어머님께서 나를  밖으로 불러 내시는 거였다.
순간 감지를 했다........아니나 다를까...
"니는 머하는 사람이고?.....새 아가 머리가 그지경이 되도록 니는 머했노?"
아이고,잠은 시동생 내외가 잤는데 그 후유증은 왜 내 책임인가.....
노발 대발 하시는 시어머님의 꾸중이 칼날 같았다.
그 날의 그 서럽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저께 막내 숙부님댁의 숙모님 제삿날..
달랑 외아들 하나 남겨놓고 출산 사흘후에 세상을 뜨신 어른이다.
그동안의 사정으로 작은집에서 제사를 모실수 없어서 내가 대신 제사를 모셨다....20여년동안...
이젠 사촌 시동생이 직접 어미 제사를 모신다고 해서 반갑고 고마웠다.
동서가 외국 사람이어서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눈썰미 있게 이것 저것 차질없이 준비를 했다.
우리 집에서 하는걸 그냥 대충 본게 아니었다.

제삿상 앞에서 절을 하는데...
동서가 따로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순간 '아차' 싶었다.
우리풍속에 익숙하지 않은 채 절을 하는게 많이 서툴렀다.
'아이고...이사람아..엉덩이는 낮추고 몸은 아주 낮게 숙이고 다리는 책상다리를......'
그러나 이말은 내 입속에서 돌아 다닐 뿐이었다.
동서의 엉덩이는 하늘을 향했고 몸은 엉거주춤해서 앞으로 곧 넘어질것 같은 자세였다.
순간 남편의 험악한 시선이 나에게 날라왔다.

제사를 끝내고 돌아오는데...
작은 집을 미처 빠져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남편은 소리를 질렀다.
"자네 뭐 하는 사람이야?....절하는 법부터 갈켜야 하는거 아닌가?...."
'아이고 이양반아 내가 안 갈킨줄 알아요?
여러차례 시범도 보였는데 유독 그 절하는 것 만큼은 지독하게도 안되더라...'
그러나 이말도 변명 같애서 그냥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윗자리가 결코 좋은게 아니다.
집안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사건만 생기면 윗자리부터 목줄 끊는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앉을려고 기를 쓰는게 아이러니가 아닐까...

우리나라 만큼 윗사람 자리 불안한 나라도 없다.
클린턴의 성 스캔들이 세상을 시끄럽게 했지만 그의 인기는 더 올라갔고
미국의 전투기가 추락을 했어도 미국 국방장관의 자리는 요지부동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아오지로 유배갔을 것이다.
문화의 차이, 사고의 차이가 같은 사건을 가지고도 엄청난 틈을 벌이는 것이었다.

이젠 어른들이 다 돌아 가시고 나니까
아랫사람들을 챙겨야 하는 자리가 결코 만만치가 않음을 살아 가면서 느낀다.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큰일에는 여유롭게 대처해야 하는 지혜를 터득해야 했다.

그래도 어른들께 이것 저것 지시받고 꾸중 들을 때가 좋았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