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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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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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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부려먹기


BY 蓮堂 2004-06-29

  


난 왠만하면 남편이나 아이들을 부려먹지 않는다.
바쁜 사람이니까.........
아이들이 어리니까..........
스스로 핑게나 명분을 만들어서 특별한 일 아니면 내 선에서 해결해 왔다.
아니, 어쩌면
내 손으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성깔이 한 몫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젠 아이들도 다 내 곁에서 떠나가 있고
손이 가야할 잡다한 일들이 서서히 줄어들었기에  내가 해야 할 일도 따라서 줄어들었는데...

휴일날,
모든 일정을 쉬는날로 몰아서 미루어 놓았기에 아침부터 바빠야 했다.
그런데,
발바닥 아프게 혼자 동분서주 할려니까 쇼파에 앉아서 신문 뒤적이는 남편이 눈에 가시인기라..
누군 인삼 묵고 누군  무 묵었나?

서서히 리모콘을 꼬나쥐었다.
"저, 잠시만 시간 내주시면 그 은혜 백골난망 입니다"
뚱하니 쳐다보는 남편의 시선을 숨도 쉬지 않고 잡아챘다.
"팔이 아파서 그런데요..장롱위에 대자리 좀 내려 줄래요?."
이럴땐 오뉴월 수양버들 처럼, 겨울 배(梨) 처럼, 나긋나긋하게 톤을 굴려야 효과 만점이다.
별 힘 안들이고 남편은 움직여 준다.

다음은...
"이 카펫은 목욕탕에 갖다 주시고요........"
"청소기가 무거운데 좀 훑어 주시면 더 고맙고요......."
"행운목 이파리좀 닦아줘요..먼지가 많네......"
"밀대로 바닥을 좀 밀어주면 엄청 이쁠건데요...."

희안하게 남편은 버턴 누르는 대로 움직여 주었다.
의외의 반응에 오히려 내가 미안 할 지경이었다.
뒤에 따라다니며 가끔씩 양념을 치면서 고명도 얹어 주었다.
"아이구....오늘따라 당신 참 핸섬하네....ㅎㅎㅎㅎ"
"이제보니 내가 남편 하나는 제대로 얻었네....."

엉덩이를 슬쩍 만져주니까 두눈을 딱 부릅 뜨는데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랄지.........하고 있네....(차마 체면에 '지랄'이라는 소리는 못하고 ㅎㅎㅎㅎ) "
이쯤에서 엎그레이드 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이따가........알았쥬?....ㅎㅎㅎㅎ"
한쪽눈을 찡긋하면서 안방을 턱짓해 보였다
"여어자가~~~~~~참내....."
쇳소리가 나도록 혀를 차지만.......
에구, 누군 이소리 하고 잡아서 했을까....

온 집을 헤집고 다니면서 어슬픈 곳을 희안하게 찾아내더니
물 청소 하려고 어질러놓은 베란다를 걸레로 문지르고 있었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행주에 풀 멕여서 쓴다고 하두만'
뱉아놓고 싶은 말인데 부스럼 만들까봐 그냥 삼켜 버렸다.

손 안대고 코 푼날....
후라이 팬에 그냥 넣고 달달 복을게 아니고
양념도 치고 간을 봐 가면서  입에 맞게 요리하면 훌륭한 음식이 되는데
왜들 그냥 날(生)로 통재로 먹을려고 하는지 몰러...
그렇게 해놓고 입맛 타령이나 하고....

이젠 알았다.
요리법을.............
아니 예전에도 알았지만 단지 써 먹지 않았을 뿐이다.
알고 있는건 써 묵어야 한다는 사실도.....

'부뚜막에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