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동네 사람들과 웇놀이를 하자는 제의에 따라 갔다.
처음 가는 집이라서 좀 쑥스러웠지만 일행중에는 먼저 가본 사람이 있어서 그래도 덜했다.
그런데 가면서 그 일행중에 한 사람이 넌즈시 힌트를 준다.
"그집에 들어가실때는 한쭉눈만 뜨고 들어 가시이소.."
두눈 다 뜨고 들어가면 실명이라도 한다는 얘긴가...
영문 모르고 우스개로 받아 넘기고 갔는데.....
벨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건 사람이 아니고 개였다.
아무생각없이 문을 열었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그래도 여기까지는 용서가 되는 애교로 봐 줄수 있었다.
현관에 발을 디디는 순간에 거실 바닥을 내려다 보니,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지 신고 들어가야 하는지 헷갈리게끔 바닥이 말이 아니었다.
갈라지고 닦지 않아서 신발 벗기가 께름직 했다.
그런데 같이간 사촌 동서의 말이 걸작이다.
"형님, 이럴줄 알고 전 어제 신었던 양말 그대로 신고 왔어요.."
어깨를 키득 거리며 실실 웃는다.
아고...그런줄도 모르고 하얀 면양말 삶아 놓은거 신고 왔는 내 발은 어이 하라고..
자리에 앉으라고 해서 앉을려니까 엉덩이가 근질 거린다.
돈은 부족하지 않은 집이라 그런지 가구는 온통 고급인데 관리를 해 주지 않아서
싸구려 중고품 보다도 나을게 없어 보여서 아깝기만 했다.
사과를 깎아 내 놓는데 사과를 씻지도 않고 부엌칼로 쓱쓱 깎는데
접시를 받히는 소반은 물론 포크나 그 흔한 이쑤시게 조차도 없단다
조상 절로 먹으라나 어쩌라나....세상에...
커피가 떨어졌는지 원래 없는지 몰라도 사러 간다고 부산을 떠는데
세수도 하지 않은 부시시한 얼굴로 밖에 나서는 그 용기가 굉장하다.
더 뒤집어 질 일은 연거푸 생겼다
커피물을 알루미늄 냄비에 끓이는 것 까지 봐줄 아량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 했는데
문제는 커피잔이 달랑 세개 뿐이란다
그것도 이빨이 빠져서 개 밥그릇 옆에서 뒹굴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충 씻어서 커피를 타는데 모자라는건 작은 밥공기와 일회용 컵이 등장했고
바닥에 타 놓은 커피를 그나마도 개가 지나가면서 엎질러서 난리였다.
보다못한 내가 한마디 던졌다.
"아이구...아주 개판이네..개판...."
속없이 쳐다 보면서 웃는 그 엽기 아줌마가 그래도 밉지가 않았다.
화장실은 또 한번 나를 기절 시켰다.
더러운건 이젠 흉이 아니었다.
변기에 물이 잘 빠지지 않아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나기에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주인은 변기 뚜겅을 열더니 무언가를 만지작 거리니까 물이 빠진다
바깥 주인을 닮아서 변기가 말을 안 듣는다고 농으로 뭉쳐 치운다.
아고..내 보기는 안 주인 닮았구먼...
손을 씻으려니까 세면대에 물이 안나온다
수도 꼭지는 떨어지기 직전이고..만지다가 망가지면 물어내야 할것 같아서 그만 뒀다.
비빔밥 시켜 먹었지만 밥상이 없어서 신문지 깔고 먹어야 했고
짝이 맞지 않은 젓가락은 그나마도 있어 준것 만도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이 참으로 위대해 보였다.
지식은 엄청나게 머릿속에 넣고 있는 여자
그러나 삶의 지혜나 융통성은 전무한 여자.
그렇다고 너그러워서 만인을 포용하지는 않는 여자.
고자 처갓집 드나들 듯이 이집저집 기웃 거리며 하루에 몇번씩 눈도장 찍는 여자
그래도 내 마누라 뿐이라는 남편에게 사랑 받고 사는 여자.
어쩌면 그 여자는 세상을 참으로 편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불편해 하고 꺼리는 부분이 그 여자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미 습관화 되어 버렸고
남의 눈 전혀 의식 안하고 내 스타일에 거리낌없이 살아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은 거였다.
모든게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어야 직성이 풀리고
더럽고 어지러운거 두눈뜨고 봐 넘기지 못하는 내 스타일이
어쩌면 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피곤하고 불편하게 만들지나 않았나 되돌아 봤다.
책상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책이 눈에 거슬려서 아들녀석에게 한마디 했더니.
"엄마, 어차피 또 뺄건데 뭐 하러 꽂아요?"
이녀석이 숙맥인지 넘치는건지......
정리정돈을 왜 해야 하냐고 묻는다.
알긴 아는데 어이없는 질문이라서 대답을 못했다.
내 생각의 정리정돈이 부족한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