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시동생과는 무려 열두살이나 차이가 나는 띠동갑의 사촌동서가 있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다가 산적같은 시동생에게 찍혀서 '사랑'하나 달랑 배낭속에 넣어가지고 쫄랑졸랑 따라와서 아들 둘 낳고 알콩 달콩 살고있는 올해 스물여덟살의 인형같이 맑고 아리따운 필리핀 동서.
보수적인 시집역사에 외국 며느리는 족보생기고는 첨이다 보니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고
작은 아버님은 집안 망했다고 꺼이꺼이 우시길 수차례.....
그러나 자식 낳아가지고 안방에 데려다 놓았으니 그 인연을 어이 할건가......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국제화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낳은 폐단의 티끌같은 후유증일지는 몰라도 아직은 이목구비 다르고 피부색이 황갈색을 띤 외국 며느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네 결혼관이
숱한 사람들의 발목을 잡아채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조건이라는 이상한 등식이 성립되지만,
그 나라뿐만 아니라 외국 어느나라에서도 조건 따지며 배우자 고르지는 않는단다.
굳이 따진다면 종교나 이념이 걸림돌이 될지는 몰라도....
'사랑'하나면 국적.나이.지위.학벌 모두를 덮을수 있으므로
동서도 부모.나라 다 버리고 물설고 낯선 여기까지 따라왔는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단일 민족이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는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고 살아왔다.
몽고족의 침략은 무려 100년동안 이어져 왔었고,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물론,
북쪽 변방을 드나들었던 뿌리없는 민족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았다.
그 전쟁통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다 그들 나라로 되돌아갔을까...
이리 섞이고 저리 섞여서 부초처럼 떠돌던 사람들이 창씨를하고 더러는 남의집에 얹혀서 살다가 단일민족의 품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니 '단일민족' 운운하는게 난 못마땅하다.
그 동서가 처음 집안 어른들 앞에서 인사 드리는날 웃지못할 헤프닝이 벌어졌다.
점심식사를 하던 중에 그 동서는 느닷없이 작은 아버님을 보더니,
"시아반님,참 나쁜놈" 하는게 아닌가....
뒤를 이어서 시숙(내 남편)을 보더니
"아주바님도 나쁜놈"
이 기절 초풍할 소리에 모두들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시동생더러는"넌 조은놈".............
알고보니 짖궂은 시동생이 놀리느라고 거꾸로 가르쳐 준걸 모르고.
동서는 열심히 배워서 실력발휘(?)를 했는거다-----잘 보일려고.
시동생은 이자리에서 그렇게 야물게 써먹을줄 몰랐다며 발뺌을하고....
처음에 왔을때 말이 안 통해서 서로 애를 먹었다
그 동서에게 우리말을 가르쳐 줄려니까 반대로 내가 영어를 배워야 가능했다.
같이 팝송을 부르며 단어를 익혔고 식탁머리에서도 공부는 이어졌다.
이제는 왠만한 대화는 다 할수 있어서 손발이 편해졌다.
한국생활 3년만에 경이로운 발전이었다.
대학축제때는 Queen으로 뽑혀서 노래와 훌라춤으로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그 사람도
'사랑'의 포로로 잡혀와서 한국의 여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아직은 모든면에서 서툴지만 동서가 아닌 딸같은 마음으로 대해줄려고 한다.
내딸보다 네살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