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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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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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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줘야 했는데


BY 蓮堂 2004-06-29

돌아오는 차안에서의 남편의 표정은 한마디로 익모초 씹은 얼굴이다.
평소에도 별로 부드러운 인상은 아니지만 오늘은 여엉 말이 아니다

바늘 끝만 대어도 터질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숨을 막히게 했지만
난 모른척 하고 딴청을 부릴수 밖에.......

10년 쓴 거실 TV가 화면을 자꾸 갉아 먹는 시늉을 해서 새로 구입할려고 합의를 봤는데
좋고 큰것만을 고집하는 남편의 취향을 알기에 미리 못을 박아두었다.
50만원짜리 이하로 구입하자고....
물론 흔쾌히 찬성을 했고...

그런데 매장에 진열된 갖가지 물건을 보더니 '見物生心' 이라고 슬며시 맘이 동했나 보다.
내가 49만원 짜리(쎄일가격)를 이리저리 살펴 보는 동안에
남편은 간 크게 120만원짜리 앞에서 매장 직원과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HD라나 뭐라나.....이중 화면에다가 화질도 죽여 준다는 직원의 꼬시킴이 남편을 부추겼다.
슬며시 팔을 꼬집으면서 눈에다가 힘 주며 암호를 보냈건만....
남편은 딴 얼굴을 하고선 내가 골라 놓은 물건엔 눈길도 안 준다.

각기 다른 물건을 가지고 우리 부부는 매장 직원과 밀고 당기는 흥정을 했지만 결론은 나지 않고,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이럴 경우엔 보통 누가 져 줍니까?"
그 직원은 남편의 표정을 살피더니,
"첨엔 남편들이 우세 하는것 같지만 결국엔 사모님들이 이깁디다"

그 직원의 지원 사격을 받고 결국은  반보씩 양보해서  80만원짜리로 합의를 봤는데
카드 결재를 할려고 카드를 달라니까 던지듯이 손에 건네준다.
그때부터 일언반구 대꾸도 않고.....

집에와서 곰곰이 생각을 하니까 맘이 안 편하다.
10년앞을 내다보고 좋은것 구입하자고 나를 설득했지만 결국엔 한쪽 손만 든게 억울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자기 뜻 어기고 거슬리는 일 한적 거의 없었기 때문에 승기를 잡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워낙 강경하게 나온 내 성깔에 슬며시 자존심 상했나 보다.

자기 뜻에 안 따라 주어서 속이 상했는지.
아니면 그까짓 돈 몇푼 때문에 이렇게 궁상을 떨어야 하는게 비참했는지.

이구...
그래 져 주자 ,아니 양보하자.......까짓거 내가 언제는 이기고 살았나......
그래야 내 맘도 편할 것 같고......
그래서,
"당신 맘에 안들면 당신 맘에 드는 걸로 해요..난 괜 찮으니까...."

그러자
한발 물러선 내게 미안 했는지,
아니면 자기 고집 부린게 부당하다고 생각했는지.
구겨져 있던 얼굴이 다림질 한것 같이 다소 밝아 지더니.....
"에이...됐어...이왕 샀는거......."

맙소사~~
그 양반은 좋은거 안 사서 화가 난게 아니고
내가 고집 부린게 내내 못 마땅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