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딸애가 마주 앉아서 간식을 먹으면서 날 빤히 쳐다봤다.
전에 없이 무언의 메세지를 얼굴 전체에 가득 묻힌채로..
"왜?"
내 물음에 냉큼 입을 떼지 않더니 느닷없이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엄마,...전 엄마에게 바라는게 있어요"
"그게 뭔데?"
"엄마에게 바라는건 한가지예요.....엄마,...우리엄마...건강하고 곱게 늙어가시는거 보고 싶어요"
이 생뚱한 소리를 하는 이유에 고개가 갸웃거려 졌다.
"엄마가 지금 추하니?"
그러자 딸애는 고개를 강하게 저으면서 한마디 덧 붙힌다.
"아녜요 엄마...지금 같이만 나이 드시면 좋겠어요"
"그럼 엄마가 지금 곱니?"
딸애는 환하게 웃는다.
"그럼요 ..우리엄마...제발 변하지 마시고요...."
갑자기 가슴에 일격을 받은것 같이 숨 턱 막히면서 눈물이 왈칵 솟는다.
지금의 내 모습이 곱단다......딸애가....
지 에미니까 높은 점수를 매긴거 알지만 알수 없는 무게가 가슴을 누른다.
과연 딸애의 높은 점수를 감당할 만큼 나 자신에게 또는 타인에게 투명할수 있었던가.
누구든 속내를 안으로 비벼넣을 나만의 얘기는 있기 마련이지만
겉으로 드러냈을때 합리화 내지는 정당화에 목숨걸고 변명할 여지는 남겨 둘수 있을까
정말 이제는 곱게 늙어 가고 싶은 욕심이 울컥 치미는건 나이 먹어감을 인정 하는거다.
곱다는건 외모를 얘기하는게 아니라는거,
그리고 형식적인 겉치레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는거,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당당하게 얘기 할수 있어야 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여 줄수 있어야 하고
어떻게 살것인가를 자신있게 흔적 남도록 설명할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건 욕심이다.......이건 상투적인 얘기가 아닌....
차라리 물질적인 욕심 같으면 미련 버리기가 쉬울텐데
인연의 욕심과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욕심이 나 자신을 더 옥죄고 드는것이다
욕심이란,
더 가질려고 하는것과 ,또 다른 하나는 가진것을 나누어 줌에 인색한것이다.
부끄럽고 추한 모습을 거창하고 그럴듯 하게 나 자신을 포장한 적은 없었는가
거울을 보았을때 나 자신을 똑 바로 쳐다 볼수 있었을까.........
솜덩이에 물 스며 들듯이 그렇게 어느날 부터인가 서서히 세월속에 침식 당한다.
탄력을 잃어버린 살 가죽의 굵은 주름을 말 하는게 아니다.
비록 물기를 모두 증발시켜 버려 버석거리는 소리가 나는 육신이지만
오뉴월 물기 오른 풋풋한 한그루의 반듯한 나무이고 싶어진다.
얼굴엔 세로의 주름을 만들지 않고,가로 주름을 그으면서....
멀지 않은 날에 난 하얀 서리 머리에 이고 있을거다.
그리고 강이 보이고 산이 보이는 자그마한 오두막 집에서 텃밭을 일구면서
가끔씩 허리펴고 진달래 흐드러지게 핀 앞산을 쳐다보고 있을거다.
해가지고 어둠이 주위를 집어 삼켰을때
호롱불 심지 돋우며 귀퉁이 한 쪽 떨어져 나간 밥상 펴놓고 무언가를 긁적이고 있을거다.
나를 이야기 할수도 있고
나를 이야기 할수 있는 그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도 글로 옮기고 있을거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그리고 내 좋아하는 지난날의 애창곡에 귀를 열어 두면서....
영화 '추억'의 주제곡
Barbra Streisand의 'The way we w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