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라는 소설은 내가 그 의미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나이에 읽어서
작가가 전하려는 메세지가 뭔지를 몰랐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주위에 돈키호테 같은 부류를 만나면서 어렴풋이 이해를 하게 되었
다.
어떻게 보면 한없이 애교스럽고 미워할수가 없도록 순진 무궁한 사람이다.
달리 해석하면 '엉뚱한 사람'을 이렇게도 부르는데 돈키호테에 가까운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다.
엉뚱하되 결코 불의와 타협은 하지 않고 남이 하지 않는 자기만의 길을 쉬임없이 간다.
우리 아파트에 돈키호테 같은 경비 아저씨가 있다.
이분은 경비직의 정년을 훨씬 넘었는 데도 불구하고 아직 현직에 계신다.
나이가 일곱살이 줄어서 그 덕을 톡톡이 보고 계신 분이다.
우리가 입주할 무렵인 10년전 부터 계셨는데 이 아저씨의 특징은 '수다'였다.
누구든 붙잡히면 그의 장황설에 진저리를 쳐 대는데 얘기 중간에 돌아가는 사람 등에다가
미처 마치지 못하는 얘기 보따리를 따라 가면서 늘어 놓는다.
내가 왜 이아저씨를 돈키호테라고 부르는가 하면
이분의 사는 방식이 마치 현실 보다는 소설의 한 귀퉁이를 차지 할 정도로 이색적이다.
우선 이분은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거침없이 해 댄다.
아내와 사별한지가 퍽 오랜데도 아직껏 아내와 사는 척 얘기 한다.
그분의 출퇴근을 아주 출세한 조카가 자가용으로 매일 시켜 준다고 해서 그대로 곧이 들었는
데 어느 비오는날 아침에 낡은 자전거를 타고 오시는걸 목격했다.
말 하자면 그분의 출퇴근용 자가용은 다름아닌 자전거 愛馬 '로시난테'였던 것이다.
등교길에 횡단보도 앞에서 두팔 휘저으며 교통정리 하는걸 먼발치서 구경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누가 시켜서 한게 아니고
스스로 팔에다가 '교통' 이라는 완장을 만들어서 차고............
옛날에 경찰관이었다고 입에 침을 튀기면서 도둑잡는 무용담을 늘어 놓아서 또 그대로 믿었는데 경찰관이 아니고 '방범대원'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마다 다 자기하고 친분이 있다고 은근히 자랑을 했다.
학교후배니, 집안 조카뻘이라느니, 친구의 동생, 더 나아가서는 자기하고 절친하다고 하면서
은근히 찍어 줄것을 부탁 했는데 말짱 거짓이었다
이젠 그분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
아니 그분이 혹시라도 말이라도 걸까봐 피해 다니는 지경인데도 이 아저씨는 그걸 모르신다.
나도 멋 모르고 몇번이나 당해서(?) 인사만 던지고 재빨리 달아났다.
그분의 그 허황된 얘기에 열심히 귀 기울여준게 번번히 붙잡히는 이유였다.
그분이 세들어 사는집 주인의 말을 빌리면 그분은 늘 외로운 분이라고 한다.
하루 2교대 근무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불 꺼진 방에서 혼자 무언가를 그렇게 지껄인단다.
사람들 한테 무시 당하지 않을려고 있지도 않은 얘기를 꾸며 내기도 하고
현실하고 아주 동 떨어진 생각이지만 혼자만의 '城'을 짓기 위해서 끊임없는 자작극에 몰두
한다.
그러나 그분은 절대로 불의는 용서 안하신다.
철모르는 청소년들이 아파트 귀퉁이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혼쭐이 났고,
음주에 걸려서 도망온 아파트 주민을 그대로 경찰서에 갖다 바쳤다.
그런데 주민들이 이 분을 괴짜로는 여기지만 결코 미워 하지는 않는다
확실한 직업 의식이 그분이 서 있을 자리를 견고히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