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어머님의 가라 앉은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집 팔렸다............."
모든 상황을 압축시킨 이 한마디에 가슴이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
'기어이......................'
난 아뭇 소리도 할수 없었다.
"아버지는?.........."
제일 염려 스러운게 아버님의 반응이었지만 다음말을 듣기가 두려웠다.
"좋으실리야 없지 뭐...."
우리 여섯남매를 키워낸 가게집을 청산 하시고 가정집으로 옮겨 앉으신지 20여년이 된다.
그 집으로 옮겨 가실때는 그 자리에서 뼈를 묻으실려는 아버님의 마지막 정착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 곳을 떠나셔야 한다.
건강이 극도로 안 좋으신 부모님을 위해서 내린 큰 오라버님의 뼈아픈 고뇌가 담긴 최선, 그리고
최후의 결단이었다.
재래식 구조로 되어 있는집이 - 일부는 고쳤지만 - 부모님의 건강을 해치는 큰 걸림돌이었다.
가장 시급한게 화장실과 마루를 오르내리는 높은 봉당이어서 한번 나오셨다 들어가실려면
여간 힘들고 고생 스러운게 아니었다.
실내 좌변기를 사 드렸지만 사용하기가 불편 하시다고 한다
심장이 안 좋으셔서 전화속에서도 항상 숨소리가 거칠게 섞여 나오는 어머님과,
거동이 불편 하셔서 엄마의 도움 없이는 문밖을 나오실수 없는 아버님,
그 수발을 감당 하셔야 하는 어머님의 고초를 오라버님은 도저히 그냥 볼수 없다고
항상 입버릇 처럼 걱정 하셨다.
남은 여생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모실려는 오라버님 내외의 효성에 난 반기를 들수 없었다.
부모님 모시기를 꺼려 하는 요즘 며느리들의 행태를 생각하면 오빠보다도 더 적극적인 올케에게
난 그저 고맙고 미안 하다는 입소리로 체면 닦을수 밖에............
3백여평에 달하는 대지에는 아버님의 손길이 구석구석 배여 있어서 차마 떨치고 나오기가 너무 아까웠다.
제일 아까운게 앞 마당에 정성스럽게 가꾸어 놓은 정원이었다.
아버님께서 쨤쨤이 줘워 날으신 희귀한 돌들과 정원수, 화초, 그리고 각종 유실수, 텃밭....
해마다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텃밭 가꾸시고 과일을 따서 갈무리 하시고.......
그 낙으로 그 집을 지키고 계셨는데......
내가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부모님이야 오죽 하실까.
가슴 앓이 하실 부모님 생각하면 내 맘이 더 찢어지게 아프다.
80여년을 고향땅에서 사시다가 이젠 뼈를 묻을 연세에 고향을 등지셔야 하는 부모님.
이것이 최선일수 밖에 없는 상황에 그저 내가 보탤수 있는건
'오빠.......잘 하셨어요.'
'엄마......이게 다 엄마를 위해서야.그러니 이젠 맘 비우고........'
'아버지......맘만은 고향에 두고 떠나시면 되잖아요'
오라버님 내외는 무슨 큰 죄를 지은양 자꾸만 자책을 하신다.
집을 팔수 밖에 없는 상황을 '불효'라는 이름으로 대신해서 부모님께 머리 조아리신다.
오라버님의 효성을 누구 보다도 잘알고 있는 나로서는 여간 민망한게 아니다.
혹시라도 아들에게 섭섭한 맘 가지고 계실까봐 부모님 다둑거리고
오라버님의 효심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역활은 내가 해야 했다.
딸이지만 나를 좀 어려워 하시는 어머님은 '그래......그래........'로 맘을 비우신것 같다.
이제 머지않아 그곳을 떠나셔야 한다.
이젠 살아서는 고향땅을 밟기가 쉽지 않으신 아버님-- 묻히러 가시는 길 밖엔........
그 맘 아파 하시는 광경을 어떻게 볼지 벌써부터 가슴이 저려온다.
이젠 연고가 없어져 버린 고향.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곳에 발길 재촉하기엔 명분이 없다.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고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