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 1층에는 아흔을 넘기신 할머니가 계신다.
큰아들 내외의 타박을 받으시는 모습이 종종 눈에 뜨일 때면 알수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죈다.
내가 40년 후면 혹시 저런 모습이 아닐까.
허리는 휘고 걸음걸이 조차도 보폭 10센티에도 못 미치고..
넘어질듯 휘청거리는 발걸음엔 지팡이가 대신해서 앞서간다.
입은 오무라 들어서 마치 괄약근을 연상케 했고,
회색빛으로 탁해진 촛점잃은 눈동자는 깊이와 언저리가 드러나지 않아서
좀비(움직이는 시체)를 보는것 같이 섬뜩했다.
그래도 아침마다 마주치면 입주위를 비틀며 간신히 인사를 건네신다.
그리곤 알수없는 주문같은 웅얼거림이 괜스레 뒷꼭지를 잡아 당긴다.
추울때는 현관밖에 쪼그리고 앉아 계셨고
더울때는 계단 밑에서 더위를 피하시는데 나와 계시는 시간은 여전히 일정했다.
어느날 사탕 한움큼을 손에다가 쥐어 드린적이 있었다
노인들은 항상 입안이 '소태' 먹은것 같이 쓰다고 하신다.
고마움의 표시로 눈을 꿈벅이시는데 슬핏 스치는 물기가 내맘을 아리게 하신다.
그날 이후 난 일부러 먹을것을 가지고 가서 손안에 쥐어 드렸다.
사탕이나 우유, 과자를 드리면 소중한 물건 챙기듯이 고이 주머니에 넣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래서 인지 나만 보시면 환하게 웃으신다.
그리곤 내 손으로 시선을 떨구시는게 아마 무언가를 기다리신것 같아서 약간의 부담도 되었다.
빈손으로 대할때는 괜히 죄를 지은것 같이 미안해서 손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저 할머니도 내 나이쯤에서는 이렇게 멀쩡하게 거리낄것 없이 활보를 하셨을텐데..
어느샌가 야금 야금 세월이 갉아먹은 흔적들이 이곳저곳에서 돌출 되는거였다.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언제든지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살면 참을수 없는 절대적인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저 나이면,
이성과 감성이 모두 소멸 되어서 판단력 마저도 사치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그냥, 쉽게 말해서....숨을 쉬니까 살아 있음이다.
한번은 물어봤다......입은 옷이 하도 남루해서....
"할머니.....저번에 입으셨던 옷은 왜 안 입으세요?"
멍하니 쳐다보시면서.......
"내년에 입을라고......내년에......"
이 어른에게는 아직도 내년이 있고 미래가 있는거였다.
여름 벌레가 여름 밖에는 말할수 없음은 여름 한철 밖에 살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90년을 살아오신 이 어른은 100년을 말씀 하실수 있는 시간적인 공간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