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였던가.
친정에 볼일이 있어서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요즘은 자가용이 너나할거 없이 다 있기 때문에 버스안은 비교적 한산했다.
이빨 빠진듯이 듬성듬성 앉아있는 틈새를 지나는데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갸웃??
이상하다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누구였더라..
이렇게 목에 가시 걸리듯이 기억이 안 빠져 나오면 내내 캑캑 거려야 한다.
세월이 쿡쿡 밟고간 흔적이 뚜렷한 그 초로의 남자는 분명 안면이 있는 얼굴이었다.
아고...이젠 다 삭아서..기억도 희미하고...
그때 그 가시같은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저........혹시........옛날에.........."
떠듬 거리는 그 남자의 기억과 내 기억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맞죠??............안녕하세요?"
난 얼떨결에 웃으며 아는체 했지만 - 별로 유쾌한 기억은 아니지만 - 그남자는 경직된채로 고개를 숙였다.
나에게 지은죄가 너무 크기에...
차라리 모른척 했더라면 목에 걸려도 내 맘은 편했을텐데....
그 초로의 남자는 내가 직장 다닐때 취직을 하기 위해서 '신원증명서'를 떼러 왔었다.
그런데 그는 전과가 있었다.
'사기 공갈죄에다가 폭행치상......."
그 남자를 보니가 그때의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형량이 커서 아마 취업하기엔 어려울만큼 유예기간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았다.
우리 3~4년 선배 쯤으로 기억이 된다
내가 그대로 떼어 주었더니 '무죄'로 고쳐 달라고 했다
그러면 공문서위조가 되는데......거절을 했더니
몇번을 사정하다가 뜻대로 안되니까 그 서류를 박박 찢더니 그대로 나가 버렸는데....
문제는 그날 저녁 내가 퇴근할 무렵에 일어났다.
만취한 상태로 나를 기다리다가 내가 사무실 문을 나서자 대뜸 욕설을 퍼 붓는게 아닌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넋을 놓고 있는데 다시 '무죄'로 떼어 달라고 반협박을 했다.
그때 남자 직원들이 달려 나와서 그 남자를 설득해서 돌려 보냈다.
그리고 얼마후에 난 퇴직을 했고 그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스무해도 더 지난 그날 그 남자는 나를 기억하고 말을 걸어 온 것이었다.
첫마디가,....'미안합니다' 라고......
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머릿속에 혼돈이 왔다.
잊은척 해야 하는지 아는 척하고 '괜찮다'고 해야 하는지..
그 남자는 아직도 객지에서 막일을 하면서 산다고 한다.
전과 때문에 취직도 안되고 유예기간이 지난뒤에는 나이가 많아져서 힘들고..
그래서 대구에서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일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난 내가 마치 죄인 같아서 그 남자를 바로 볼수가 없었다.
그때 내가 공문서위조 했더라면 취업해서 편히 살수 있었을까
드러나지 않고 영원히 비밀로 된채 아무일 없이 살수 있었던것을 내가 막은걸까..
맘이 한구석 무거웠다
그래도,
안 잊고 스무해가 지난 뒤지만 사과를 할수 있었던 그 사람의 솔직한 용기에 난 가슴이 뭉클했다.
아들 둘 대학 졸업 시켰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그 순박성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왠지 내 자신이 미워지는 날이었다.